시장기가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늘상 식당의 메뉴판을 떠 올리게 된다.

어제와는 다른 메뉴를 선택할까 혹은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않은 색다른 메뉴를 선택할까 등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내심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모두의 선택과 매우 흡사해 지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사람의 입맛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성품과 성격에 의한 식성도 다르거니와 각자의 식생활 패턴으로 제각기 안착된 식습관에 따라 여러 사람의 메뉴는 항상 제각각이기가 십상이다.

우리들의 혀는 참으로 민감한 감각기관이다.

미각을 담당하기도 하고 기능적으로는 언어의 기둥이 되는 신체기관 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혀의 적합도를 판단하기란 진실로 난해하기도 하고 어쩌면 타인에 의해서 판단되어지기가 불가능한 사안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린 메뉴판을 사이에 놓고 한바탕의 설전을 벌린 후에야 같은 발걸음으로 씩씩하게 식당으로 향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무수히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세상살이가 아주 간단한 점심식사 메뉴를 선택 하듯이 쉽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마음을 맞춰 한 목소리를 내기위한 선택의 몸부림처럼 대략 난감한 과제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쪽과 저쪽의 방향성은 분명 정 반대의 방향이지만 그 중심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쪽에서 보면 저편이 상대편이고, 저편에서 보면 이쪽이 상대방이 된다.

결국 우린 그 방향성의 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서로라는 결론이다.

지금 내가 어느 쪽에 서 있든 그 방향성의 원 안에 들어있는 분명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식당의 메뉴판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의 생각에 이정표 같은 잣대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힘들여 논쟁하지 않고도 몇 가지 의제를 압축해 둔 이정표를 앞에 놓고 우린 그 메뉴판 안에서 마음을 모야야 하는 쉬운 숙제를 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쩌다가 혼연일체가 되어 논쟁 없이 저녁 술자리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이구동성 시원한 냉면메뉴가 한 여름의 논쟁을 시원하게 선택 해 주기도 한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 종종은 따끈한 국물이 연상되는 점심 메뉴가 등장하는 때이다. 한정되어 있지만 메뉴판이라는 작은 마당에 모여 아우러지는 동지애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신명나는 인생 축제 한판이 전개될 가을 메뉴판이 우릴 부르고 있다.

이 가을메뉴 속에서 우리 서로의 마음과 배를 불릴 선택을 앞둔 풍요함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황금들녘의 배부른 벼이삭처럼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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