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사회적 약속이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사회가 무질서하다. 시민들에게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법을 무시하고 어길 수 있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때로 번거롭다. 그냥 가로질러 가면 가까운 거리를 횡단보도를 찾아, 그것도 신호를 지켜 건너야 한다. 나 한 사람 편하자고 행한 불법 주차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가중시킨다.  

세상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며 불법과 탈법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없다는 식이다. 법을 어겨도 단지 도덕적 비난이나 낮은 처벌을 받는 정도라면 무시해 버린다. 처벌보다 불법으로 얻는 이익이 크면 상관하지 않는다. 법보다 못한 수준의 삶을 사는 이들이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법만큼 살아간다. 법에 저촉되는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법이 요구하는 것은 마지못해서라도 이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체 건강한 청년은 때가 되면 군대를 가야한다.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기도 한다. 세금내는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내야 하니까 낸다. 자신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이 사회는 제대로 작동하고 기능한다. 

법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법이 미쳐 다 커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법보다 더 나은 행위가 그 공간을 메운다. 국가에서 정한 최저임금조차도 이런 저런 조건을 달아 안주려는 사업주가 있는 반면에, 할 수 있는 대로 더 나은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업주도 있다. 자기에게 별 이득도 없고, 안 해주어도 그만인 일에 성심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남을 향한 배려와 섬김으로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다. 

구약 룻기에 과부가 된 이방 여인 룻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겪게 되는 일이 나온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다. 구약 율법에는 추수할 때 밭 모퉁이 벼는 베지 말고,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을 다시 줍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9-10).

그러나 이런 규례를 잘 안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룻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룻 2:2).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이라는 말 속에는 율법의 규정한 명령조차도 안 지키는 사람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정황상 아침 일찍부터 이 밭 저 밭을 전전했지만 보아스의 밭에 이르러서야 허락을 받고 이삭을 줍게 된 것으로 보인다(룻 2:7). 

주인 보아스 밭을 관리하는 사환은 그런 의미에서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율법의 규정대로 룻에게 추수하는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보아스는 규정된 법보다 나은 행동을 한다. 그는 이방 여인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그리고 일꾼들을 위해 준비된 물을 마시게 한다(룻 2:8-9). 식사의 자리에 초대하며(룻 2:14), 더 나아가 일꾼들에게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충분히 줍도록 배려한다(룻 2:15-16).

룻은 보아스에게 “왜 저에게 이렇게 잘 해주세요?”라며 황송해하고 감격스러워 한다(룻 2:10, 13).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 부모와 친지들,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잘 생각나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가 모여 오늘 내가 있는 셈이다. 그들은 법보다 나은 배려와 사랑과 섬김으로 나를 대했다. 

오늘 나는 법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왜 저에게 이렇게 잘 해주세요?” 누군가에게 내가 베푼 친절 때문에 이런 감사의 표현을 들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복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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