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시기에 많은 나라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재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아 세력을 형성하였다. 최근에 식객이라고 하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세력이 있는 집안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그 주인을 도와주는 인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식객을 많이 거느린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과 재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가장 많은 식객을 거느린 사람으로는 맹상군이 있다. 그는 약 3천명의 식객을 데리고 있었고 직업이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포용해주었다. 

병법가로 유명한 손자와 오자서 모두 오나라의 공자였던 광에게 식객으로 있었다. 광은 원래 오나라에서 처음으로 왕이란 호칭을 사용했던 수몽의 맏아들인 제번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왕위 세습이 매우 복잡해졌다. 당시의 왕이었던 요가 소와 총리라는 두 개의 작은 국가를 멸망시켰고 초나라와는 국경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광은 자신의 자객인 전제를 동원하여 오왕이었던 요를 살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으니 바로 오왕 합려가 되었다. 합려는 자신의 쿠데타에 도움을 주었던 오자서를 중용하였고 손자병법을 만든 손무를 등용했다.

또 초나라가 백주리를 죽이자 그의 손자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했고 합려는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대부로 임명하기도 했다. 

오왕 합려는 기원전 512년에 오자서와 백비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공격하였고 초나라로 도망한 공자들을 죽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초나라의 도읍이었던 영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때 손무는 백성들이 조세와 부역의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초나라와의 전쟁을 막아섰다.

그 다음해에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영토 일부를 빼앗았다. 이어서 월나라를 공격하여 굴복시켰다. 초나라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자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와 함께 초나라 공격을 준비하였다. 

오왕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초나라의 도읍을 공격할 수 있냐고 묻자 두 사람은 초나라의 낭와가 욕심이 많아 이웃하는 당나라와 채나라가 원망이 많으므로 이들과 연합작전을 시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준비된 오나라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초나라를 압박했고 그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다섯 번이나 초나라를 격파했다. 이후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찾아 그 시신을 밖으로 꺼낸 다음 쇠로 만든 채찍으로 300번을 때렸다. 이와 관련한 고사성어 ‘굴모편시’가 전해져 온다. 그렇게 복수를 했던 오자서도 훗날 그 잔인함이 결국 자신에게도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오나라가 초나라와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도성이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된 주변의 경쟁국이었던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했고 월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또 군대를 파병하였다. 오나라의 위협을 못이긴 초나라는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진나라는 군대를 파병했다. 

당시 강성했던 오나라에 맞서기 위한 초나라와 진나라의 연합군을 깨뜨리기 위해 아들인 부차(夫差)를 파견했다. 용감했던 부차는 초나라의 땅 일부를 빼앗았으며 초나라는 자신의 수도를 영이란 곳에서 약이란 곳으로 옮겨갔다.   

다음해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월나라도 그 시기 국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취리라는 곳에서 오나라와 전면전을 전개했다.

구천은 오나라 군대를 몰아냈고 합려는 발에 상처를 입었다, 이후 군대는 후퇴했고 합려는 그 상처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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