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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96사마천의 사기를 말하다(12) 새로운 맹주, 진(秦)의 목공이 등장하다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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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13  11: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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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나라의 환공이 춘추시기에 맹주로 등장했을 때 그의 권력이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사후 시신도 수습을 못할만큼 비참한 상태에 빠졌고 자식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골육상쟁을 벌이다 나라가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역사는 권력의 성쇠를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경고를 하고 있으나 권력의 독배에 취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 오류를 반복하고 있음을 지금도 보고 있다. 제나라의 환공이 죽고 제나라가 약화되면서 그 공백을 메우는 세력이 또 하나 등장하고 있었다. 

  당시 중원에 편입되지 못한 서쪽 지역에 진(秦)이 등장했다. 진나라는 중원과 멀리 떨어진 가장 서쪽에 있어 초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길 때 오랑캐였던 견융을 막아내고 주나라 왕실을 보호했기 때문에 중원의 나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진나라는 영어 발음으로 Chin으로 차이나(China)란 이름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가장 서쪽에 있고 서쪽 유목민들과의 교류가 빈번하여 이것이 유럽까지 전파되어 중국을 차이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진나라는 9대 제후인 목공(穆公)이 권력을 잡으면서 서쪽 지역의 신흥 강대국으로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목공은 인재를 매우 아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 백리해가 있다. 백리해는 원래 초나라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는데 다섯 마리의 검은 양을 주고 해방시켜 진나라로 데려왔다. 

백리해는 이때 이미 나이가 70이었고 재상의 자리를 극구 사양하면서 자신의 친구인 건숙을 추천했다. 목공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신하를 보내 건숙을 데려와 상대부에 임명했다. 백리해와 건숙은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 목공을 위해 부국강병의 정책들을 건의하여 진나라의 국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이웃하고 있던 나라에서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진나라에 식량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목공이 백리해에게 물어보자 백리해는 비록 제후는 나쁜 사람이지만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냐면서 식량을 빌려주자고 했다.

진나라는 많은 양의 식량을 빌려주었고 다른 나라들이 진나라와 목공을 칭송했다. 

그리고 수년 후 이번에는 진나라가 흉년이 들어 식량을 요청하였으나 이웃 나라의 제후였던 혜공은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진나라를 공격했다. 전쟁에서 패할 찰나에 이전 목공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했던 300명의 도적들이 나타나 그를 도왔고 오히려 혜공을 붙잡을 수 있었다. 

목공은 혜공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해서 자신의 나라로 돌려보냈고 이에 감동하여 자신의 태자를 인질로 보내고 영토를 떼어 주었다. 목공은 점차 힘을 키워 동쪽으로는 황하 연안까지 진나라의 영토를 확대하였다. 

춘추시기에 나라들 중에 정(鄭)나라가 있었다. 이때 정나라의 한 관리가 목공에게 정나라를 공격할 것을 청했다. 백리해와 건숙은 정나라가 전략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말렸으나 목공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백리해와 건숙의 아들들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정벌에 나섰다. 두 신하의 말을 듣지 않은 목공은 결국 정벌을 실패했다.    

목공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후회했으며 이후 다시 힘을 길러 서쪽의 융을 정벌하여 그 아래에 있던 열두 나라를 차지하였다. 목공의 이러한 국력 성장에 힘을 기울인 것은 훗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기초가 되었다. 인재를 알아보고 중시하며 개인을 버리고 국가를 생각하는 지도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목공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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