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생활주변에는 사람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이 짜증스럽게도 하고, 불쾌하게도 하고, 화를 내게도 한다. 양심이란? 법적인 기준에 앞서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바르게 행동하려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보도를 걷다 보면 보도를 가로질러 막아 주차해 놓은 차량을 흔히 본다. 이렇게 주차해 놓으면 사람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차 도로 내려서서 차량 후미를 돌아 다시 인도로 올라서서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럴때 이 차주라도 있었으면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다.

전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많은 승객이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데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두 줄로 서서 타십시오’ 라는 문구와 ‘손잡이를 잡으십시오.’라는 문구가 분명히 쓰여 있다. 그런데도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서있는 사람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급히 뛰듯이 걸어올라 가거나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인가 아예 한쪽 줄을 자연스레 비워 놓고 한쪽으로 서서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단 1~2초 어간에 차를 탈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어 다급한 마음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습관적으로 그러는 사람이 많다.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 되고 또 규칙은 지켜야 되지 않겠는가. 이른 아침 골목길이고 큰 길이고 나가 보면 쓰레기장이 따로 없이 온통 다 쓰레기장이다. 대리운전 전단지, 일수카드, 성매매를 유인하는 아가씨카드, 담배공초, 빈담 배갑, 먹고 버린 음료 팩, 술병, 구 토, 방뇨 등 그야말로 도배하듯 깔려져 있다.

도대체 누구 보고 치우라는 것인가. 물론, 환경미화원들이 새벽부터 나와 온종일 쓸어 담기도 하거니와 일일 취로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줍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구 버리는 사람들의 양심은 무엇인지 한 번 따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새벽 운동 길에 나서고 보면 한적한 외곽 도로 인도변 녹지에 있는 벤치, 또는 공설 운동장 휴식 공간에 있는 벤치에 보면 먹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버리고 간 술병과 술잔, 안주 찌꺼기 담배꽁초 휴지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다정한 사람들 끼리 사가지고 와서 즐겁게 먹었으면 갈 때 잔류물 들을 싸가지고 왔던 봉지에 그대로 담아서 가다가 휴지통에 넣고 가도 될 일 아닌가. 이렇게 버리고 가면 누가 치우라는 것인가.

아파트 단지 옆 도로변에 우거진 수목 지대나 자연 녹지 공원에는 시 당국에서 계절 따라 연속해서 피도록 화단을 잘 조성을 해 놓 았다. 그러나 군데군데 잔디가 자라고 자연스레 잡초지역도 있어 조화를 이룬 곳이 많은 데 누군가가 와서 밭을 일궈서 채소를 심은 곳이 많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경작금지’라는 경고판이 꽂혀 있다. 그러나 그 경고판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어떤 것은 아예 뽑혀져 나뒹구는 것도 있다.

물론, 잡초나 나있는 땅에 채소라도 심어 먹겠다는 데 무엇이 잘 못인가 하는 생각도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곳에 잡초는 그냥 잡초라기보다는 그 일대가 녹지공원으로서 조성되어 있기에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다.

꽃과 잔디와 잡초와 수목이 어우러져 자연미의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곳에 채소밭이 웬 말인가? 정히 그렇다면 채소 대신 다른 야생 화라도 심어서 공원 조성에 일조도 하는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양심이 버려진 현장이 어찌 이것 뿐이겠는가. 버려진 작은 양심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큰 비리와 부정으로 번지고 있으니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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