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역사서인 사기는 중국의 신화 시대부터 다루고 있다. 우리가 역사와 선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기록에 근거한다.

즉 기록이 남아 있는 시기는 역사시기 그리고 기록이 없을 경우에는 신화 혹은 설화라고 하며 선사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중국 역사에서 기록이 남아 있고 그 유적이 발굴된 것은 은나라 시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나 말의 뼈, 혹은 거북의 등뼈에 점을 치고 상형문자로 기록한 것이 은나라의 유물로 이 시기부터 중국의 역사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사마천은 그 이전의 신화 시기부터 다루고 있다. 마치 우리가 단군 신화를 만들어 역사를 정립한 것과 같이 사마천도 신화의 시기를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삼황은 일반적으로 복희, 여와, 신농을 가리키며, 오제는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을 의미한다. 우선 복희란 인물은 중국 최초의 씨족을 대표하는 전설속의 인물이다.

복희는 중국 민족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중국 의약의 시조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뱀의 몸과 악어의 머리, 그리고 사슴의 뿔과 호랑이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붉은 잉어의 비늘과 독수리의 발톱을 가지고 있어 중화민족을 태동시켰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이 용의 후예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복희는 주역에서 말하는 팔괘를 만들었고 낚시 하는 법, 사냥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고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복희에 대한 기록에서 중국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시 시대를 설명하는 인물로 판단된다. 

두 번째 인물인 여와의 경우에는 복희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고 마치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와 같이 지구상에 인류를 멸망시키는 홍수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 홍수 뒤에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자 개울에 비친 자신의 모양을 닯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는데 흙 알갱이들이 모두 사람이 되어 인구가 크게 번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와가 알려주는 것은 당시 고대의 중국 사회가 모계 사회였음을 대변해준다. 

우리가 여성이 잉태의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것을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고 돌봐주었다는 표현과 맞아 떨어진다. 또 어떤 설화에서는 복희가 자신의 동생이었던 여와와 혼인하여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여와가 만든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체수가 줄어들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녀가 짝을 지어 혼인을 통해 자손을 번성시켜 대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이유로 여와는 혼인과 출산, 임신의 신이 되었고 지금도 여와를 모시는 사당에는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와는 창조의 여신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복희와 여와를 잇는 다음은 신농이다. 신농은 말 그대로 농업과 관련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인간들은 정착 생활을 하지 않고 여기 저기 떠돌면서 채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농은 염제라고도 불리며 중국에서 부락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농경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신석기 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염제의 자손이라고 스스로를 말하기도 한다. 신농은 인간들에게 농경법을 전수해주었고 그래서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황하문명의 시작이 신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4대문명의 발생지인 황하에서 농경이 시작되었는데 그 중심에 신화속의 신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신농을 농업, 의약, 주조의 신으로 숭상하기도 한다. 

사마천도 사기 속에서 이들을 신화속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오제 시기를 묘사하면서 좀 더 현실에 맞는 이야기들을 구상하고 있다. 이렇게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의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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