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바람이 약간 거칠게 스쳐 분다. 얼마 안 있어 입동 절이 다가 오면서 일교차가 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몇 차례 비가 지나가면 눈 소식도 곧 뒤 따라 올 것이다.

그 며칠 사이가 추풍낙엽의 진풍경이 연출될 최적기를 맞을 것 이다. 살짝만 바람이 불어도 수십여 개씩 낙엽이 쏟아진다. 마치 눈이 날리듯 휘 날리기도 하고 노란 은행잎은 온통 바닥을 물감처럼 물 들이기도 한다. 누런 벗 나무 잎사귀 위에 덮어씌우듯 올라앉은 빨간 단풍잎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긴 손가락을 넓게 펴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누워있는 마로니에 잎은 한편의 미완성 서정시 같다.

새파랗게 대지를 덮고 있던 잔디밭에 허락 없이 내려앉은 왕 참나무 잎은 그간의 해우를 즐기는 듯 포근히 안겨있는 아기 모습 같다. 얼마간의 시간을 잔디밭에 누워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며 퇴색 되어질 기쁨에 잠 못 이루는 초겨울 날들이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긴 동면을 위한 선 몽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초저녁잠에 취해 미리부터 붉어진 수줍고 깡마른 단풍잎이 선봉이 되어 줄줄이 영면에 들 시나리오를 짜다가 잠이 들것 이지만 그중에는 점차 부서져갈 자신의 환상에 밤새 부스럭 거릴 낙옆 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아직 덜 끝낸 숙제를 두고 잠을 설친 학창 시절처럼 말이다. 이 가을 막바지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무거웠고 가장 거추장스러웠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추풍낙엽 세레머니 같은 한해의  정리를 위해 노랗거나 혹은 붉거나 구리 빛 참나무 잎새처럼 희로애락이 교차 되는 동면의 선잠을 자고 난 개구리처럼 어설픈 도약을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더 길고 넓게 건너뛸 긴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인생의 나이테도 한 줄이 늘어나게 되지만 적어도 이 가을의 대미를 장식할 낙엽 세레머니 정도의 현란함이나 장렬함이든 고즈넉함이라도 배어 있어야 할 연륜이다.

소임을 마치고 조용히 내려앉으려 하지만 성숙하지 않은 모습이 아쉬운 시간이다. 주변의 잡된 소음에 아직도 가슴이 격동하고, 옳고 그름이 모호한 불쌍한 인간들에 대한 적대감이 왕성한걸 보면 아직 가을 낙엽만큼도 휴식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인생이 덜 숙성 되어 있음이 맞을 것 같다.

주변의 구설들과 이해 불충분이 유난히 득실거리던 올 한해를 어떻게 갈무리 할까를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난 아직 낙엽의 정서에도 못 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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