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계 한 부분을 건너뛰어 겨울 초입에 온 느낌이다. 보일러를 틀지 않은 방안에 전기매트만 키고 일어나니 찬 공기가 훅 끼친다. 

썰렁한 아침이다. 몸이 찌뿌둥하니 나이에 걸 맞는 아픈 곳이 생긴다. 왠지 팔도 잠깐씩 쑤시고 느닷없이 두통이오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무엇보다 여름의 나와는 다르다. 급히 보일러 온도를 올려 본다. 

팔년을 함께한 반려묘와 이별한지 두 달이 되었다. 그 작은 동물이 이 집 어디든 사랑스럽게 돌아다니던 모습이 선연하다. 출근을 하는 아침이면 그가 오들거리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를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모두가 독립을 하고 없는 넓고 고요한 적막 가득한 집은 자칫하면 ‘빈둥지증후군’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며칠 전 통복천을 걷다가 씨가 여물어가는 코스모스를 보았다. 한들한들 바람결에 흔들리는 분홍과 흰색 꽃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늦가을에도 순서를 기다렸다 피는 꽃이 있어 기쁘다. 갈대와 부들 억새를 피운 가을 벽지 중후하다. 마음이 심쿵해지는 청화쑥부쟁이, 씀바귀꽃, 큰꿩의 비름, 국화와 더불어 우리의 쓸쓸함을 덜어줄 저 꽃에 반하고 만다. 떠나는 것의 부분 부분에 이식된 첨예하고 섬세한 자연경법에 새삼 숙연해진다. 

“자신에게 없는 것에 슬퍼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에픽테토스의 말과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세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금 불행한 시간의 어디에 뜻하지 않은 기쁨이 있었고, 막연하고 답답한 연속을 멈추게 하는 행운에 감사한 마음 기도를 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순환의 순수 공식을 잊지 않고 산다면 우리 모두는 도사가 되어 있을 터인데, 때론 처절하게 비루의 시간에 놓인 바라보아야 겸손해지는 삶의 경법도 사는 법의 일로一路다.

지난여름 여행길에 들른 영월 주천면에 위치한 인도예술박물관에서 본 다양하고 조화 있는 작품들 중 눈길이 머문 것은 불가촉천민의 그림이었다. 흙과 소똥이란 거친 재료로 익살스럽고 풍부한 표현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불투명한 미래의 시간보다 하루하루 당장의 시간이 더 절실한 그 삶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환히 눈부신 아침 맞음에 감사하다. 

‘떠나간 것은 떠나간 데로 모든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다정한 것과 이별 하는 일은 푸른 핏줄이기 때문임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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