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잃고 신분증도 잃었다. 나의 또 다른 손처럼 열고 닫기에 부지런했던 수첩도 없어진 것을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았다.
내 부주의로 잃은 것이라 생각되어 당황스럽고 불안해 며칠이 지나도 산란하다. 눈에 선한 게 꿈속에서는 귤과 지갑이 함께 보였다.
혹시나 희망하며 우편함 앞에서 기다렸다, 어느 마음씨 깊은 행인이 주워서 우편함에 넣어 줄 수 있다고 하루 동안은 굳게 믿기도 하였다.
지갑을 잃기 전까지의 행로를 더듬어 몇 번을 되짚으며 두리번거린다. 버스정류장 의자며 장미덩굴 속이나 쓰레기통을 엎드려 뒤지다가 나를 유심히 보는 한 할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그 분은 내 모습이 몹시 피로해 보였는지 그의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내게 주었다. 나는 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마시고 묵묵히 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 풍경은 저절로 만들어진 나만의 현장이다. 구름이 하나의 형체로 있다가 금방 흩어져 제멋대로 떠 가듯 생활은 잃음의 연속이 아닌가.
물건을 잃어도 이 지경인데 사람을 잃어가며 나는 앞으로 간다. 엄마를 잃고 친구를 잃고 그 과정을 한 풀이 하듯 종이에 쓴다. 애초에 내 것 이라는 것, 깨어지고 멀어지고 사라진다. 사건 전의 모습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어 흔들리는 중심을 달래며 나를 챙긴다.
“사람들은 끝없이
낡고 늙은 것들로 달려간다
거기서 세월의 흔적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세월의 흔적을
찾으면 환호하고
끌어 안는다”
- 책 김열규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에서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신분증 분실 신고를 하였다. 다시 찍은 사진을 내밀며 내 이름과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처음은 잃었지만 지금은 그 상실을 풀어서 스스로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