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절 가운데 그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오해되거나 오용되는 구절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고 암송하는 구절이다. 미국의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이 구절을 근거로 쓴 <불가능은 없다>는 책이 오랫동안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구절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다음에 나오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의 ‘모든 것’에 자기가 얻기를 원하는 소원들을 대입하였다. “성공, 합격, 승진, 자녀, 성적, 명예, 권력 등등...”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요술지팡이나, 알라딘 램프처럼 이 말씀을 사용하기도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앞의 말씀은 단지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면 이 말씀이 무엇이든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의미였을까?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감옥에 갇혀서 기록한 것이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자족한다고 하였다. 그 끝에 등장하는 것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씀이다. 

사도 바울이 하려는 말은 세상의 것을 자신의 에너지나 삶의 기초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있고 없음에 달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이 있다고 해서 행복하고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오지 않았으니까 세상의 것을 빼앗긴다고 해서 방해를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를 감옥에 가둔다고 해도 주님이 떠나가지 않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풍부함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어떠한 필요도 채워지지 않는 궁핍함에서도 주의 은혜가 있다면 성공적으로 사명을 감당해 낸다는 말이다. 필요가 채워지는 풍부의 상태서든, 채워지지 않는 궁핍의 상태서든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들을 잘 다루어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다는 믿음이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치명적인 질병을 위해 간절한 작정기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

바울은 이 문제만 없으면 자신의 사역에 날개를 달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내 은혜가 ‘지금’ 너에게 충분하다”였다.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데 왜 하나님?”이라는 바울 사도의 기도에, “그건 니 생각이고...”가 응답인 셈이다.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감당해 나가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진정한 만족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불만족이 결정된다. 부귀영화가 만족의 근거라면 그것이 없으면 불행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족의 근거가 아니라면 좀 없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풍부에도 궁핍에도 대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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