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라는 제목의 영화 한편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음악상 등 그 해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했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의 삶을 자신이 회고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영화에서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푸이의 만주족 이름은 아이신교로 푸이(愛新覺羅溥儀)이다. 여기서 아이신교로는 청나라 만주족의 황족들의 혈통을 의미하는 성씨로 보면 된다. 

마지막 황제인 푸이는 1906년에 출생했고 11대 황제인 광서제가 사망하자 1908년에 두 살의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에 대한 선택권 없이 주어진 황제의 운명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고통의 시작을 울리는 나팔 소리가 되었다. 

중국의 역사에서 보면 개국의 황제는 대부분 기세가 등등하고 후세에 마치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멸망하는 시기의 황제는 그 말로가 아주 비참하게 그려지고 나라를 망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푸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갔음에도 망국의 황제가 되는 억울함도 같이 녹아있다. 

그는 손문의 동맹회가 주도한 신해혁명과 배신자 원세개에 의해 1912년 2월 결국 286년간의 청나라는 막을 내렸다. 이후 1917년에는 원세개가 죽고 혼란이 발생한 틈을 타 장쉰이 푸이의 복벽을 시도하여 청조부흥을 선포하기도 하였으나 전국적인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자금성 한쪽에서 거의 연금 생활을 하던 푸이는 영국 출신의 존스턴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스스로 변발을 자르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원래 푸이가 황제에서 퇴위할 때 자금성에서 생활을 약속받았으나 1924년 11월 5일 새로운 군벌세력은 푸이에게 세 시간안에 자금성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하게된다.  

이때 신변의 불안을 느낀 푸이는 영국과 네델란드 공사관에 자신의 보호를 요청하였으나 내정간섭을 이유로 거절 당했다. 한편 일본은 푸이를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베이징의 일본 공사관으로 그를 데려갔다. 이후 1925년에는 다시 일본 정부에 의해 천진으로 옮겨졌고 그는 일본의 만주 침략을 위한 꼭두각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31년 일본은 본격적인 만주침략을 시작한다. 만주는 중국의 중공업 중심지역이며 조선과 함께 향후 일본의 중국 침략과 동아시아 침략에 있어서 중요한 보급기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일본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짧은 시간만에 만주 전 지역을 차지하고 소련과의 경계까지 자신의 세력을 확대했다. 

이후 일본은 다른 열강들과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손안에 있던 푸이를 이용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일본은 국제연맹에서도 탈퇴하고 1934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푸이를 만주국 황제로 옹립하였다. 일본의 괴뢰 정부인 만주국이 탄생했으며, 푸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꼭두각시 황제가 되었다. 

1937년에는 본격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만주국은 당연히 일본의 동맹국으로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9일 소련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국을 점령했고 결국 푸이는 13년간의 괴뢰 정부 황제로 소련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1950년 중국의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자 중국에 인도되었고 그는 전범관리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1959년 12월 모범수로 특별사면을 받았으며 베이징의 식물원 정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될 무렵 암에 걸렸는데 그 어떤 병원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훗날 주은래가 특별히 한 병원에 입원시켜 주지만 이미 말기였다. 1967년 10월 그는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선택된 비운의 주인공인 마지막 황제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이렇게 사라져갔다. 평범한 서민 보다 못한 괴로움과 불안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그의 꿈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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