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신문
기획·특집중국, 중국인의 지혜
중국, 중국인의 지혜 412다시보는 중국 역사 (67) 강희제(康熙帝), 청나라 융성의 초석을 만들다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0.21  11:27:3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임금의 명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집권 초기에는 잘하다가 말년에는 여색을 가까이 하거나 판단력이 흐려져 국가의 운명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당나라의 현종은 초기에는 뛰어난 황제로 국가를 발전시켰으나 훗날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하여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였다. 

 
청나라의 경우,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강희, 옹정, 건륭 세 명의 황제시기라고 하는데, 실제 강희제가 황제가 된 후 청나라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를 열었다. 강희제는 1654년에서 1722년까지 생존했는데 자신의 아버지인 순치제가 천연두로 사망한 후 8살의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이후 61년간 황제를 하였으며 이 기록은 중국 수천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황제를 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나이가 너무 어릴 경우 보통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당시 순치제의 어머니, 즉 강희제의 할머니였던 태황태후는 수렴청정을 하지 않고 네명의 대신들에게 황제를 보필하도록 하였다. 이를 보정대신이라고 하는데 초기에 이들은 명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환관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환관을 몰아내고 만주족의 충복들로 하여금 황제를 보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보정대신 중에 오배라는 병부상서가 군권을 쥐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황제를 겁박하기도 하였다. 강희제는 어렸음에도 자신이 힘이 약한 것을 알고 몰래 자신의 세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이후 오배를 궁중에 끌어들여 체포하였고 ‘군주기만죄’등 30개의 죄목을 들어 결국 사약을 내려 죽음으로 몰았다. 당시 강희제의 나이가 겨우 15살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아주 빠르게 ‘군왕의 도(道)’를 터득한 인물이었으며 이때부터 자신이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강희제 시기에 청나라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의 정책은 일관되게 친민(親民)정책을 고수했다. 개인적으로는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했다. 자신의 옷도 기워서 입을 정도로 검소했다. 이러한 행위는 중국 역사상 거의 살펴볼 수 없는 사례이다. 그는 나아가 부패한 관리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그 토지를 국가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살기 어려운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명나라 때 10만명에 달하던 환관과 궁녀의 수를 400명으로 대폭 줄였으며 그 비용도 40분의 1에 불과했다. 소작농들에게 흉년이 들면 가장 먼저 세금을 감면해 주었고 그의 정책으로 국가는 빠르게 안정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인구가 1억명에서 1억 5천만으로 50%나 증가하였고, 비록 황제가 만주족이었으나 한족들도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의 정책은 당시 명나라에서 투항한 조건으로 중국의 남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오삼계 등의 반란을 비록 시간이 걸렸으나 해결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오삼계 등이 일으킨 ‘삼번의 난’을 진압하는데 숫자가 적은 만주족을 보내지 않고 한족으로 구성된 녹영군을 보냈다. 결국 한족과 한족의 전쟁을 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한족들의 도움으로 오삼계 등을 제거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한족에게는 황제였고, 몽골이나 유목민에게는 대칸으로 불리면서, 명나라의 영토를 모두 손에 넣었고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점령하여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유라시아 육상 제국을 만들어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완성했다. 
 
강희제는 삼번의 난을 진압하는 것을 시작으로 타이완의 정성공의 손자도 항복시켰고, 러시아와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200년간 지속되던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문제가 해결되기도 했다.그의 노력은 이후 청나라 번영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초석이 되었다. 올바른 지도자와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그 나라가 번영과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강희제의 통치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평택상공회의소, 평택시기업지원교류협의회 및 평택기업인연합회 협약식 개최
2
“정리정돈을 잘 하자”
3
평택시, 공원 내 나무(식생)관리 부실
4
‘독감 예방접종 부작용’
5
평택시, 소사벌 지구‘가로수 관리 소홀’
6
'축제에 대한 방역 문제점'
7
평택시, 관광호텔 관련“특혜 없어”
8
지산동 - 송탄로타리클럽, 노인 구강 검진사업 협약
9
안성시, 뒤죽박죽 관리되는 향토유적
10
시민사회재단 건설위원회, 목수들의 재능 기부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평택시 비전5로 35, 501호(비전동) (주)평안신문  |  대표전화 : 031-692-5577  |  팩스 : 031-692-5579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기 다 00922  |  발행인 : 한규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지정 : 한규찬
Copyright © 2011 평안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p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