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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10다시보는 중국 역사 (65) 명나라의 멸망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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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7  11: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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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절대 명제와 같이 국가도 흥망성쇠를 경험하고 결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마치 영원할 것 같던 정권이나 정부도 ‘화무십일홍과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과 같이 더 빠르게 사라져 간다. 

 
명나라는 1368년에서 1644년간의 왕조로 한족 최후의 정권이었다. 명나라 앞에는 몽골의 원나라가 있었고 그 후에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있으며, 청나라 멸망 이후 중국에서는 다시는 황제제도가 유지되지 못했고 혁명과 질곡의 시간을 겪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명나라도 초기에는 북쪽의 유목민족을 제압하고 군사력을 확대하였으며 만리장성을 개축하여 다시는 유목민족의 침략을 받지 않겠다는 강한 열망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영락제에 와서는 아예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백만명의 군대를 양성하고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기 위해 군함을 건조하였고 당시 환관이었던 정화로 하여금 해양을 통한 세계로의 진출을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영락제가 사망하면서 명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황제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중요한 정책결정을 개인에게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황제나 무능한 황제가 등장하면 바로 국가 전체의 운명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락제 이후 해금정책(海禁政策)을 택한 것이었다. 해금정책이란 바다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정책으로 더 이상 명나라가 대양을 통한 세계로의 진출을 포기했고, 동시에 스스로 고립되어 외부의 세계와 단절되어 정체되고 낙후되기 시작했다.   
 
영락제를 이어 황제가 된 영종의 시기에 몽골대륙에서 서쪽에 살고 있던 오이라트 부족이 몽골족을 통합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공격했다. 이때 황제는 환관의 감언이설에 속아 직접 군대를 통솔하였으나 오이라트 부족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인질이 되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황제가 되었으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명나라가 쇠약해진 것을 알고 각지의 유목 민족이 공격해왔다. 또한 남쪽 해안가에는 왜구들이 수시로 명나라의 해안을 공격하여 침탈해갔다. 많을 때는 200척이 넘는 배로 공격하기도 했다. 
 
이 당시 북쪽의 유목민족과 남쪽의 왜구에 의해 시달리면서 이를 ‘북로남왜’라고 할 정도로 국방이 약화되고 있었다. 이후 만력제가 등장하였으나 국내외의 침입과 반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만력제도 초기에는 나름대로 정사를 살폈으나 갈수록 도교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특히 만력제 시기에 영하의 회족들이 난을 일으켰고 또한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발생한 임진왜란에 대한 원군 파견 등으로 국고가 점차 비어가기 시작했다. 무능한 황제가 계속 되면서 환관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관료들은 황제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환관들을 통해 보고를 하고 명령을 받음으로서 환관들의 농단이 더욱 거세졌다. 
 
그 이후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황제가 등극했다. 당시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가 수차례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때 청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던 명나라의 명장인 원숭환을 제대로 전쟁을 하지 못한다는 죄목으로 사형시켜 버렸다. 이후 더 이상 청나라를 막아낼 장군은 사라지게 되고 국경이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부패와 전쟁으로 인해 국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그 중 이자성이 일으킨 농민반란의 세력이 가장 컸다. 이자성은 서안을 점령하고 국호를 대순으로 바꾸어 북경으로 진격하여 1644년 북경을 함락시켰다. 이때 황제 숭정은 자금성 뒤의 경산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 지금도 북경 자금성 뒤의 경산에 오르면 목을 맨 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만리장성을 지키던 오삼계는 숭정 황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나라에 항복하여 청나라군의 앞잡이가 되어 북경을 함락시켰다. 오삼계 역시 훗날 삼번의 난으로 청나라에게 용도 폐기되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한다. 영원할 것 같은 것들도 어느 순간 그 취약점이 드러나고 빠르게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자신들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속에서 살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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