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을이 가을 가을하다.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당한 기온에 선선한 바람에 산천초목은 한참 익어가는 중이다. 여러 가을 노래 중 필자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참 좋아한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은 늦가을의 상념을 노래한 듯하다. 

 
이렇게 가을은 청명한 하늘의 상쾌함과 익어감의 충만한 이미지,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쓸쓸함, 해 지는 황혼녘의 고즈넉함이 적당히 섞여있다. 겨울을 이겨낸 따뜻한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데 반해, 겨울을 예감하는 선선한 가을은 좀 더 정적이고 사색적인 면모를 지녔다. 짧게 지나칠 가을의 날들은 잠시나마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어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하늘하늘 주변에 피어나는 가을 꽃들과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에 시선을 두게 한다.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 감염병 사태가 봄을 지나 여름, 그리고 가을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스크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일들로 갑갑하고 답답한 현실을 사는 우리네에게 계절의 변화는 사치와도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감염병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장기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마음의 건강상태를 더 잘 챙겨야 한다. 그리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은, 그래서 ‘뉴 노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나름의 감정적 돌파구가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지치고 우울해지는 ‘코로나 블루’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난 주말 오후 아들과 인근 들판을 산책했다. 따가운 햇살을 맞고 걸으며 나눈 말이 있다. “사람에게도 광합성이 필요하대. 그래야 우울한 마음도 사라진대” 따뜻한 커피 한잔, 가을 햇볕과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기, 파란 하늘과 맞닿아있는 황금빛 들녘에 서 보기. 그리고 좋아하는 시 한편, 음악 한곡에 눈과 귀를 기울여 보기, 코로나만 아니라면 여기저기 가을 여행도 참 좋을 텐데... 무엇이라도 좋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내 마음에 비타민 같은 가을의 작은 사치를 누려보시라. 
 
갑자기 오래 전 군 입대를 앞두고 느꼈었던 왠지 모를 답답함이 생각났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나름의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다.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도 행복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에는 나의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을이 가을 가을하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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