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다. 특히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나는 어머니의 애틋한 자식사랑을 잘 나타낸 이청준의 단편 소설인 ‘눈길’을 지금까지 수십 번은 반복해 읽었다. 읽을 때마다 부모의 그 절절한 사랑이 가슴에 와 닿곤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주벽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형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장남 역할을 하면서 어렵게 자수성가 한 사람이다. 그는 어머니를 노인이라 부른다. 주인공은 힘겹게 살아오는 동안 노인은 어머니 노릇 못해줬고 자신도 사느라고 노인에게 해 준 것도 없으니 피차 주고받아야 할 빚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오랜만에 시골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거기서 20여 년 전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형이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 아버지 때부터 살아왔던 집까지 팔렸다는 말을 듣고 상황이 궁금하여 방학 때 집에 온 주인공. 어머니는 그 팔려 버린 빈 집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 주인의 양해를 얻어 아직 집을 지켜 온 흔적으로 안방 한쪽에다 이불 한 채와 옷궤 하나를 남겨 놓았다.
 
타지에서 온 아들이 하룻밤만이라도 옛집의 모습과 옛날의 분위기 속에 자고 가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하루하루 빈 집을 청소하면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하룻밤을 묵고 새벽같이 어머니와 아들은 눈길을 걸어 시외버스를 타는 곳까지 왔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아들의 발자국이 눈 위에 선명했고, 그 길을 되밟고 있는 노인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길을 걸었다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투박한 사투리로 이렇게 말한다.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소설에서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숨겨진 이야기를 미처 알지 못했었다. 자식만큼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 마음이다.
 
못난 부모 만나서 자식이 고생한다는 생각,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 마음은 더 아리고 아프다. 남들만큼 잘 해주어야만 부모일까? 지금도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부모의 내리사랑은 변함이 없다. 잘 해준다고 해도 부모는 자식에게 여전히 뭔가 미안함 마음이다.
 
자식을 낳아보니 그제야 부모의 심정을 알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애틋한 사랑으로 나를 길러준 부모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정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 속담이 틀리지 않다. 꼭 무슨 날이 아니라도 평소에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고 살펴드리는 것을 당연한 숙제처럼 여겨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이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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