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면회를 가는 날이다.  옥색 레이스 양말과 복숭아 캔을 들고서 도착한 요양병원은 시내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산중턱에 있었다. 
 
지금처럼 꽃들이 지천인 계절에 요양원 뜰은 꽃 한포기 없이 소나무만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굳은 듯 푸른빛이 슬프게 느껴졌다.  
 
현관 밖으로 면회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사각으로 비닐막이 쳐진 작은 공간은 마치 저승과 이승의 대합실 같은 이상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저쪽 세상 쪽으로 기울어진 곳, 이 서늘한 비닐 막을 사이에 두고 이모와 나의 할 말이 둥둥 떠다니며 침묵한다. 손도 잡지 못해 어이없는 생이별의 현실을 입 밖으로 차마 내어 뱉지 못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이모는 엄마와 나를 각별히 챙기셨다. 엄마가 아플 때에는 직접 요리한 음식과 과일을 수시로 가져 오고, 가위와 가운을 챙겨와 엄마의 병상에서 머리카락을 정성껏 다듬어 주셨다.  나에게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게 하였고, 야학을 할 때 한 학기 등록금을 장롱에서 꺼내 봉투에 담아 주신 분이다.
 
십분도 채 안되는 면회시간 이지만 얼마나 많은 교감이 오고갔는지, 이모는 손을 흔들며 들어가신다. 요양보호사가 이끄는 휠체어에 겨우 의지하여,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보신다. 그 모습을 발을 동동 구르며 따라가 지켜보며 어찌할 수 없는 이 무능과 괴로움에 풀벌레처럼 울었다.  
 
그제 부터는 카페에 앉기 어렵고, 즐겨 찾던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휴무일에 어쩌다 집을 나오면 갈 곳이 없어 서성인다. 그러다 버스를 탄다. 목적지 없는 버스 안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한다.
 
처서가 지났다고 풀벌레가 운다. 귀뚜라미는 낮보다 밤과 새벽사이에 일제히 운다. 그렇게 긴긴밤을 내내 울어대면 어떻게 불면을 재울까! 
 
요양병원으로 나오는 농로를 걷는다. 벼는 봄과 여름과 장마를 지나 스스로 익은 알곡의 무게로 수그러졌다. 풀밭에는 흰 코스모스와 연보랏빛 나팔꽃이 피어 환하다. 
 
햇빛 아래서 그 옛날처럼 엄마와 이모와 셋이 나란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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