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에 시청 직원이 교회를 방문했다. 교회의 비대면 예배 여부에 대한 현장 점검 차원에서다.

 
약간은 계면쩍어 하면서 내게 처음 하는 말은 “요즘 많이 어려우시죠?”였다. 현장점검을 해야 하는 담당자로서 예의를 차린 말이었다. 나의 대답은 “고맙고 미안합니다”였다. 공무원이라고 휴일에까지 쉬지 못하고 근무하고 싶을까?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로 누구보다 바쁜 게 공무원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서로가 못할 노릇이다. 
 
몇 차례 코로나 대유행의 고비가 지나갔지만 이번이 더욱 엄중한 상황인 것 같다. 지난 몇 달 코로나 사태가 조금 잠잠해져서 사회 전체적으로 느슨해진 분위기였다. 더구나 휴가철이라 많은 이동도 있었다. 그런데 일부 교회들과 정치단체들의 불법적 집회들이 불을 붙인 셈이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정부의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지켜왔는데, 몇몇 교회들의 무책임한 행동들로 헛수고처럼 되어 버렸다. 필자의 경우엔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필자도 예배시간 내내, 더구나 설교시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설교를 했다. 내가 감염되는 것도 문제지만, 혹시 내가 무증상 전파자가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맞고 나니 허탈한 심정이다. 
 
어떤 이들은 밀집한 접촉이 빈번한 카페나 음식점들은 놔두고 왜 교회만 과도하게 탄압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정부의 느슨해진 방역관리가 화를 키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사태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도 궁색한 변명처럼 되어 버렸다. 그것은 그것대로 따져볼 문제이지만 여하튼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교회가 비난받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그 강도가 세다.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예배는 포기할 수 없는 신앙행위다. 기독교인들의 표지자체가 ‘주일 성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많은 혼란을 준다. 아무리 비대면으로 예배한다지만 그것이 현장예배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긴박한 재난의 상황이다.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신앙적 명분도 중요하지만 이웃사랑과 덕을 세우려 한다면 나의 자유보다 다른 이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다만 이런 비상한 때에 어떻게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겨져 있다.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을 맞아 “나 하나쯤이야”, “설마 무슨 일 있겠어?”가 아니라 누구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와 이웃의 안전을 지켜 줄 것이다. 수고하는 이들이 참 많다. 
 
의료진이 그렇고 공무원들이 그렇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손해를 감수하며 묵묵히 이 재난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다.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하루 속히 이 코로나사태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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