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7장에는 어떤 어머니와 그 아들 미가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인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고 재산을 꽉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가가 어머니의 돈을 몰래 훔친다. 어머니는 없어진 돈을 백방으로 찾다가 못 찾으니까 화가 나서 저주를 퍼붓는다. 얼마나 험하게 저주를 했던지 이 저주를 들은 아들 미가가 자기가 훔쳤다고 와서 실토를 한다. 아마 영험하다는 제사장이나 무당을 불러와서 저주의 굿판이라도 벌였을 법하다. ‘이 돈 훔쳐간 놈을 하나님이 저주해 주셔서 평생 불행하게 살다 지옥가게 해달라거나, 재수 옴 붙게 해달라고’ 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엄청난 저주를 하니까 아들은 돈을 들고 와서 자수를 한다.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사사기 17:2상). 

 
어머니는 설마 자식이 범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돈을 되찾을 가망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온갖 거칠고 악한 말로 저주를 해놨는데, 이제 와서 돈이 다 돌아오고 그것도 자식이 가져간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영 찜찜하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머니는 아들에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한다(사사기 17:2하). 저주를 한만큼 축복을 하면 상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잘못한 아들을 하나님 앞에 회개시키고, 또 자신도 경솔하게 저주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저주를 열 번 했으면 축복을 열 번하면 되지.” 이것이 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아들 미가는 어머니에게 돈을 돌려주려 한다. 어머니는 돌려받기를 거절한다.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사사기 17:3). 어머니 생각에는, “이거 저주를 한 돈인데 오히려 나한테 그 저주가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에라 이 돈을 가지고 액땜이나 하자. 너를 위해 그 돈을 녹여 우상을 만들어 줄 테니 네가 가져라”는 것이다. 아들 미가도 그 돈을 어머니에게 한사코 돌려주려 한다. 하는 수 없어진 어머니는 어떻게 하는가? 그 훔친 은 1100개 중에서 은 200을 우상 만드는 사람에게 주어서 아들 명의로 신상들을 만들게 한다(사사기 17:4). 이렇게 액땜을 하고 나머지 900은 어머니가 다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아들보다 한 수 위다.
 
신앙인이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그 신앙이 매우 미신적이고 기복적(祈福的)인 경우가 많다. 세상에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듯 모양과 방법은 기독교식으로 바꾸었지만 어떤 종교행위가 마치 복을 불러오고 더러운 귀신은 쫓는다는 생각으로 종교예식을 치르는 때가 있다. 주일에 예배하는 일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혹시 예배 안 드리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지 몰라서 하는 것이라면 큰  일이다. 감사헌금이 감사해서라기보다는 뭔가 캥기는 일이 있거나, 앞으로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서 드리는 뇌물조의 헌금인 경우도 있다. 많은 종교행위가 신앙적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했을 뿐 미신에 가까운 경우를 본다.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며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하나님을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다. 매사에 분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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