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책장 옆 서재 사이에서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침묵 속 발효와 수양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낡은 가방 7개를 들춰내면서 헤식은 먼지들을 툭 툭 털어 본다.

 
지금 내가 털고 있는 먼지는 이들이 이 구석진 안식처에 자리하고 수행에 들어가기 이전의 것들이 분명 하다.
 
그중에는 여러 번 먼지를 훑어내고 쓰러 내려도 잘 닦이지 않는 가방 몇 개가 드러난다. 아마도 수행이 덜 끝난 것이기에 털어낼 먼지들을 선별하지 못한 것들로 생각을 했다.
 
꼭 다문 가방의 입을 길게 잡아당기며 말을 걸듯 내용물을 꺼내 들면서 이러 저러한 서류들 속에 적혀있는 날짜를 본다. 한참을 계산한 연후에야 적어도 30여 년의 수행과 더불어 10여년의 득도에 이른 기간을 더해야 할 기간이었음에 잠시 손을 멈춘다. 그렇다고 시간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숨을 다시 가다듬어 본다.
 
1978년 연말 평택 군 4H연합회장 시절 농촌 진흥청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이었다. 순간 참으로 많은 분량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한참의 시간을 추억에 잠겨 그때의 순간들을 다시 꺼내보려 애써 본다.
온통 꿈 들 뿐 이었던 기억들이 전부였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 한껏 부풀었던 그때의 설렘이 지금은 어떻게 귀결 되었는지 상계되지 않는 상상의 날개들. 혹은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만 공상조차도 꿈 이었던 시절의 냄새를 가방 속에 코를 대고 맡고 있다. 새삼 고개를 돌리자 털고 있던 먼지들이 경이로워 지기 시작 했다. 7개의 가방을 열 때 마다 그 시대의 냄새가 들어 있을 것이란 부푼 기대를 품어 본다.
 
오늘은 아주 오래 된 가방 하나만을 열고 들어가 한참을 놀다 나와 나머지 6개의 가방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다시 넣어 둔다. 나머지 가방들은 앞으로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 하는데 결정적, 핵심적 기둥이 될 종자로 남겨 둔 것이다.
 
힘들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하나씩 열어보려 한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바로 이 가방 속 먼지들이 나의 꿈을 발효시켜 주었기 때문 이었구나 라는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새로운 가방 하나가 만들어 질 때마다 난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한 것 이었다.
 
그 가방 하나마다 담겨있는 먼지 속에는 그때의 땀방울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점철되어 있을 것을 안다. 아마도 내 기억보다도 더 세세히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분명 하기에 서둘러 열지 않기로 했다.
 
어느 맑은 봄 날 이던지, 장마가 길게 멈추지 않는 긴 여름 밤 이든지, 무릎까지 눈이 덮힌  긴 겨울 밤 이던지, 낙엽 구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나를 노래하게 부추길 때라든지, 혹은,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운 나른한 오후를 택해 한 페이지 씩 넘겨보듯 가방을 열어 볼 것이다. 내겐 아직 열지 않은 6개의 가방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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