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자영업자 A씨는 최근 거래업체 사장 B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A는 예전하던 사업을 폐업하고 세금 5천만 원 가량을 체납해 골치가 아팠는데, B역시 비슷한 처지였다가 벗어났다며 핸드폰번호 하나를 건넸고, 그 번호로 전화를 하니 상대방은 200만원만 주면 해결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A씨가 믿지 못하자 상대방은 “국세청이 압류한 계좌에 있는 돈을 세금으로 내고 계좌를 해지하면 5년 뒤 세금이 싹 사라진다.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작년말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폐업했거나 사정이 어려워 세금을 체납한 자영업자를 타킷으로 한 ‘국세 소멸시효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브로커의 수법은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를 악용하는 방식입니다.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란 체납세금 5억 이상이면 납부기한으로부터 10년, 5억 미만이면 5년이 지나면 국세청이 세금을 걷을 수 없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다만 국세청이 압류한 재산이 있으면 소멸시효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압류된 재산이 없는 날로부터 5년 또는 10년이 지나야 하는 것이죠.
 
브로커들은 체납자 상당수가 압류된 재산이 적다는 점을 노렸습니다. 
 
체납액은 수천만 원인데 압류 재산은 기껏해야 수백만원의 예금이나 보험인 체납자가 많아, 몇백만원만 내면 수천만원의 세금을 안 낼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는 것이죠. 신종수법인데다 음성적으로 퍼져 국세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업계에서는 “국세행정 시스템에서 소멸시효가 다 돼가는 체납자를 추려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게 조치할 수 있는데 국세청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세청은 5천만 원 이상 체납자를 지방국세청에서 따로 관리할 수 있지만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고액 체납자부터 조사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또 체납자 대부분은 진짜로 돈이 없어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들의 명단을 다 뽑아 소멸시효가 끝나지 못하게 하는 건 정상적인 국세행정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소멸시효가 납세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해 체납자로부터 돈을 받고, 정부가 정상적으로 징수할 세금까지 못 걷게 만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며 브로커에 대한 처벌을 비롯해 국세행정의 보완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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