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봄 송화 가루로 세상을  뒤 덮은 소나무의 위세가 때 이른 장마에 기세가 꺾인 듯하다.

 
흔히 산에 서식하는 소나무는 한줄기로 성장해 높이 오른 후 여러 가지를 나누며 성장 하지만, 관상용 정원수인 반송(盤松)은 어려서부터 여러 줄기로 성장하며 둥근 모양으로 성장하며 그 아름다운 자태가 남다르다.
 
따라서 그 둥근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봄이면 새로이 자라 오르는 솔 싹이며 곁가지를 정리해 주어야 관상수로써의 아름다운 모양을 유지 할 수 있다.
 
회사 앞 대형 화단에 스무 그루 정도의 반송이 영산홍, 철쭉의 영롱함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년 배 과수원을 하며 자란 덕에 유실수의 전지는 어깨너머로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조경용 소나무의 전지는 경험이 없을 뿐 더러 그 방식 자체가 다르다.
 
곽 팀장님의 경험 섞인 시범으로 우리 팀 세 명은 처음으로 전지작업에 들어갔다. 몇몇 요령들을 알려 주었고 나름대로 뚜걱뚜걱 잘라가기 시작 했다.
 
마음먹은 대로 모양이 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잘라 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높은 곳을 향해 치솟는 가지를 먼저 자른다. 왜냐하면 둥근 모양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복잡하게 가지가 엉킨 부분을 솎아내듯 자른다. 통풍이 안 되면 스스로를 죽게 만든다는 조언으로 필요성을 인지하며 잘랐다.
 
셋째 곧바로 뻗어 나가는 가지를 자르고 옆으로 삐뚤어진 방향의 가지를 살려 둔다. 
나름대로 공식처럼 외면서 가지를 자르다 문득 사람과 소나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고민을 해 본다.  구태여 곧은 가지를 잘라 사선으로 자라게 하려는 인간들의 의도가 어쩌면 사악하기도 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끝없이 경쟁하던 지난날의 흐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곧추선 가지들을 골라 자르면서 전율 같은 오묘한 감정을 되새겨 보았다.
 
그렇다. 사람은 더 멀리 더 높게 더욱 넓게 더운 깊게 인성을 키워 세상에 우뚝 서야 한다. 절대로 곧은 신념의 가지를 잘라선 안 된다.  
 
그러나 관상수는 그 목적이 다르다. 고의로 곧은 가지를 잘라 왜곡의 모양을 만들어 커다란 관상수가 되기 위해선 그릇됨이 바른 길 이다. 
 
우리 사람들도 혹 그릇된 가르침이나 문화에 당면하기도 한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우뚝 서는 법도 배워야 하겠지만 반송처럼 그릇된 문화들도 인간형성의 요소들로 승화시켜 위대한 작품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릇된 문화에 노출된 여린 소나무 가지 같은 젊은이들이 휘청거리지 않고 곧거나 굽음에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기를 바라면서 곧은 소나무 가지를 애써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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