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꽃비가 내려 넝쿨장미 잎과 소나무 바늘잎 끝에 물방울이 꽃망울처럼 맺혔다. 

 
보석보다 찬란하고 영롱하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비의 노래를 들으며 풀들은 샤워를 한다. 
 
꽃이 떠나고 잎으로 가득 차오른 나무들도 먼지를 털어내는 맑은 아침, 어쩌면 비는 싱그러운 도둑 같기도 하다.
 
삼라만상 모든 생명은 ‘청춘’이라는 한 시절 또는 뜨겁고 붉은 절정의 순간을 가진다. 경이로움은 영원이 아닌 가버리고 돌아오기를 순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무십일홍이 아니겠는가. 봄을 물들이던 모든 색들이여, 어디서 또 이토록 신선한 컬러를 가지고와 쌀밥같이 하얀 이팝꽃을 피웠는가 묻고 싶다. 아직 우리에게는 팬지와 패랭이와 작은 카네이션과 장미 유칼리스와 아마릴리우스가 있다. 
 
우주의 모든 주연인 오르페우스 그대는 차오르기만 하시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적인 영혼의 힘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사람살이도 아름다운 동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결혼이라는 인생 출발 기로에 있는 아들과,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작은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했다. 성인으로 마주앉은 두 아들 각자에게 맞춤형 조언을 하며 오랜만에 함께 먹는 밥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밥상머리에서 하던 잔소리마저 잠시 떠올려지며 아득한 시간이 겹쳐진다. 
 
비가 내리는 저녁 세친구가 오랜만에 모였다. 각자 열심히 사는 중에 어느 공간에나 꽃을 피워 감상하는 여유와 기쁨 누리는 법을 아는 소중한 벗들이다. 
 
‘압축된 우리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재미와 흥미 뇌 이런 아름다움을 공유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뇌는 암흑이다. 오감을 통해 착시하고 통계할 뿐이다.’ 라는 강연 일부를 생각한다. 
 
평온함의 온도를 찾아서, 급하게 메모해 놓을 걸 보니 비록 ‘밥 위의 김치는 달빛이다’라고 억지를 한다 해도 우리는 감성 저장소가 넘치는 사람들이니 이 웃음 공유가 달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접시에는 어화둥둥 꽃잎이 꽃놀이를 하고, 낮은 선반 위에는 얼마 전 인사 온 아들 여자 친구가 사온 꽃바구니 꽃들이 시들시들 야위어 가고 있다. 
 
환경에 상관없이 공간 밖으로 조용히 생의 시간을 이동하는 일은 모든 생명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숭엄한 일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나는 소요는 반드시 소강이 있다. 사물이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회강반조, 또는 자기 성찰이라 한다. 
 
꽃이 져도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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