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 선 전설 속의 공간,
살아있는 민속마을

 
 

 경주 양동마을

양동마을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민속마을이 아니라 마을을 가꾼 선조의 뒤를 이어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제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 ‘살아있는 마을’이다. 묵직한 전통의 내음과 함께 정겨운 사람의 냄새, 인정의 냄새가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각박한 현대의 어느 모퉁이에 놀랍게도 살아남은 옛 사람들의 흔적이자 시간이 멈춰버린 전설속의 공간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자 양반마을

경주 중심부에서 동북쪽으로 약 50리쯤 떨어진 시골인 강동 면 양동리에 설창산 기슭에 펼쳐진 양동마을에 이르면 경주는 참으로 대단한 도시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불국사며 석굴암이며 감은사지며 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무더기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한편에 이렇듯 전설같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조선시대의 마을까지 숨겨 놓고 있다니 하 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이 마을마저 바로 몇 년전 안동의 하회 마을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양동마을이 요즘에 와서야 새삼스레 유명해진 명소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날리는 신라의 옛 유적들의 명성에 가리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실은 5백년 넘게 듬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전통의 내음을 간직해 온 알짜배기 문화유산이다.

이제 말했듯이 양동마을은 마을의 역사가 줄잡아 5백여 년이 넘는 유서 깊은 자연 부락으로 주로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살던 동성(同姓) 마을이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반촌(班村), 즉 양반 마을이었다. 마을은 낮으막한 야산, 설창산의 주봉인 문장봉에서 뻗어내 린 여러 갈래의 산등성이를 그림처럼 에워싸듯 형성되어 있다.

유명한 안동의 하회마을이 낙동강이 휘감아 흐르는 널찍한 평지에 펼쳐진 것과는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하회마을이 강 건너편 산언덕인 부용대에 오르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차는 것과는 달리, 양동마을은 산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도 좀 처럼 본 모습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러 갈래로 흘러내린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끼고 펼쳐져 있는 탓이다.

그러나 마을 입구로 들어서 네 줄기로 뻗어내렸다는 이 골짝과 저 등성이를 요모조모 둘러보면 이만큼 정겹고 운치 있고 아름다운 마을이 따로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숨가쁜 언덕이 있는가 하면, 숨은 듯 외진 터가 있고, 금방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올법한 널찍한 평지도 있다.

 
 
무첨당과 향단, 당당한 국보급 옛 가옥의 행렬

가옥들은 이렇게 산기슭 곳곳에 제각기 개성 있는 자태로 서 있다. 그야말로 고래등 같은 크고 멋진 집도 있지만, 그에 대비 되는 작고 초라한 초가집도 있다. 아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양반들이 살았을 법한 큰 기와집들은 높은 지대에 있고, 평민이나 하인들의 집이었을 초가는 그보다 아래 쪽에 양반 가옥을 에워싸듯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반촌의 구조를 한 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다. 기와로 지어진 양반가옥이 약 50여 호, 정감 넘치는 초가가 1백10호 정도로 약 1백60여 호의 가옥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이 중에는 보물급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옥은 보물 411호로 지정된 ‘무첨당’이다. 양동마을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회재 이언적의 종가 별채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시원스런 누마루가 왼쪽 앞으로 튀어나온 ㄱ자형 건물로 양쪽 끝에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 마루가 있는 구조다. 개인 가옥으로는 드물게 두리기둥(원기둥)에 팔작지붕을 올린 품위 있고 당당한 집이다. 누마루에 돌린 난간 또한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 솜씨가 돋보인다. 바깥주인이 일상적으로 거하며 손님을 맞는 사랑채로서 적격인 구조이지만, 실제로는 제사를 올리는 제청(祭廳)의 기능이 강했다고 한다.

무첨당이라고 씌여진 편액 밑에 붙어있는 종이에 한자(漢字)로 제주(祭主)들의 이름이 씌여있는 것이 그런 사실을 말해 준다. 집 주인의 신분과 명예를 짐작케 해 주는 참으로 당당한 건물이다.
 

마을에서 피어나는 사람 냄새, 인정의 냄새

또 하나 양동마을에서 만난 인상적인 건물은 ‘향단’이다. 양동마을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으리으리한 건물이기도 하다. 이 역시 보물 412호로 지정 된 국보급 문화재로서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당시, 그를 총애하던 임금 중종이 모친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사한 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중첩된 기와가 방문하는 이들을 압도하는 으리으리한 사대부 가옥이다. 전체적으로는 사방을 모두 외벽으로 둘러싼 폐쇄형 가옥이어서 현관문을 걸어 잠그 면 안쪽 사정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밖에서 보기엔 다소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서 더욱 우람하고 듬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가옥이다.

이밖에도 ‘수졸당’ ‘서백당’ ‘손소영정’ ‘관가정’ 등의 가옥도 고색이 창연하면서도 의젓한 자태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양동 마을의 대표적인 고가(古家)들이다. 양동마을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민속마을이 아니라 마을을 가꾼 선조의 뒤를 이어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제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 ‘살아있는 마을’이다.

그러므로 묵직한 전통 의 내음과 함께 정겨운 사람의 냄새, 인정의 냄새가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마을 길을 걷다보면, 우거진 숲과 흐드러지게 피 어난 꽃망울,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아련한 시절의 향수를 되살려 내 준다. 각박한 현대의 어느 모퉁 이에 놀랍게도 살아남은 옛 사람들의 흔적이자 시간이 멈춰버 린 전설속의 공간이다. 양동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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