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을 앓으며 꽃을 피우는 계절, 꽃들의 기침 소리 요란하다. 봄의 8할을 잃어버린 기분에 통복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물오른 벚꽃나무 오돌토돌 개화의 순번을 기다리고 조팝나무가지 연둣빛 새순을 밀어내며 노란개나리 봄의 송가 부르는 통복천의 봄은 곧 환희로 가득 차겠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휴일에도 집콕 생활이 계속되어 가까운 천변의 변화마저 보는 여유를 잊고 지냈다. 
 
얼굴에 화색도 없이 길어지는 일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일탈마저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봄은 늘 오는 속도를 기억하며 자연의 어떤 곳이라도 꽃과 잎 그리고 새소리로 다가와 머문다. 
 
‘살랑살랑’ ‘싱숭생숭’ 이런 설렘을 주는 말들과 말풍선 놀이를 하며 천변의 봄날과 조우하는 기쁨, 소중한 것들은 작지만 가장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언어와 풍경을 안고 걸으며 백색 마스크 밖, 교향악 단원들을 모집공고 했다. 흰뺨검둥오리 두 마리가 젖은 깃털을 말리고 있다. 천변 아파트 불빛은 치렁치렁한데 덤불 사이로 숨어드는 철새인 오리는 왜 아직 떠나지 못 했을까, 혹여 도태라면 어찌하나. 
 
어느 책에서 ‘병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우리 몸 안의 균형이 깨질 때 감염 된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바이러스 왈, 이제 알겠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순결한 축복인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떠나게 되어있는 결과는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모든 인과응보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낙태시킨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염두에 두면 확실해진다. 
 
다시 살랑살랑 봄바람 휘감으며 주변을 바라본다. 조금씩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물결, 나뭇가지, 간지럽고 싱그러운 봄바람에 기분이 좋다.
 
1년 4계절 중 첫 번째인 봄은 ‘소생’의 완주이다.
 
<봄은 사계절의 머리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로다>라는 문장을 보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위태로운 삶을 생각해 본다. 
 
처지가 변해도 놀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상황 위기도 잘 대처하는 ‘처변불경‘의 놀라운 능력을 지닌 우리, 함께 그 슬기로움 협력하며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자가 격리, 물리적 혹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너무 친근한 매너가 되었다. 마스크 안 숨어있는 상대방의 아름답고 밝은, 웃는 얼굴을 보며 걷는 일이 결코 추억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