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베란다에는 제라늄이 있어 좋았다. 어느 해 이른 봄 날 길가에서 작은 화분에 심겨진 것을 구해서 물을 주고 햇볕 드는 창에 두었더니 매년 봄 여름 가을 꽃을 피웠다. 분홍 주황 빨강빛을 피우며 지면 또 피었다. 

 
꽃을 다 피우고 쉬는 제라늄은 잎만 무성하게 싱싱한 완벽한 모양을 갖추어 바라보면서도 행복해, 그 이파리에 손가락을 살짝 문지르면 허브향이 진하게 손끝에 닿았다.
 
지난해 초겨울 한기에 얼어 죽을까봐 제라늄을 들어 안으로 들였다가 다시 베란다에 놓았다가를 전전긍긍하다 거실안에 들였다. 들여서 삼일 일주일 보름이 지나면서 잎이 시들시들 한잎 두잎 누렇게 변하더니 떨어지고 만다. 
 
제라늄은 집안의 탁한 공기에 질식하는 것보다는 고적하게 추운 곳에서 얼어 죽는 것이 더 나았나보다. 아니, 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으니 그대로 두었으면 살아서 다시 꽃을 피웠을 것이다.
 
아끼고 사랑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되어 그 대상에 잔인한 폐를 끼치게 되었으니, 살피고 살피고 또 살피다가 아니 살핀 만도 못하고 대상을 잃어버리는 꼴을 겪었다. 신경 쓰고 꼼꼼히 하다가 오히려 실수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무엇에 한 번 화살이 꽂이면 아교처럼 집착하여 생기는 부작용에 치를 떨었다.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나중은 애쓰지 않은 처음상태마저 그 모양을 일그러뜨리게 된다.  
 
자연 상태로 내버려 둘까 아니면 조금만 마음을 기울일까? 아니면 온 힘을 기울여? 애지중지 아낀 것들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다정다감해서 끈적이는 것보다는 시원시원 바람을 맞이하려니!
 
화초를 왜 이리 아꼈는지, 현실에 피곤과 문제들을 피하여 제라늄에 꽂혔는지 모른다. 제라늄과의 사랑이 이렇게 끝나고 사람과의 사랑은 멈칫 뒷전으로 조심스럽게 골방으로 들어가는 심정이다.   
 
내 방 라디오에서 가수의 호소력 깊은 목소리가 흐르는데 그 가사가 시간과 함께 맞물려 잠시 머물고 간다.   
 
  내 마음에 고향을 따라 
  병든 가슴 지워버리고 
  슬픈 계절에 우리 만나요 
  해 맑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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