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 첫 구절이 아직도 생생한 이유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암기방학숙제를 받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외우고 다니던 기억이 선명해서 일까.

 
아니면 구절에 명시된 조상의 빛난 얼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바쁘게 살아오느라 그 의문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일까.
 
내 유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옆 눈질로 따라 배우며 조상님을 알아가기 시작 했고, 성년이 돼서는 학업과 직장에 밀려 조금씩 알아가던 조상의 얼을 잠깐씩 잊고 살아갔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가정을 꾸리고 삶을 관리하기에 지쳐 마무리를 찾지 못했다.
 
아들이 태어나 내 유년시절처럼 곁눈으로 터득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됐구나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려 했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이 혼인을 하여 성가를 하고, 드디어 조상의 은덕을 알고 어김없이 설이나 명절 등에 참석하여 차례를 올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이제는 그 빛났던 조상의 얼이 어느 것인지 알아 갈만 했다. 그런데도 딱히 이 것 이다! 라고 아직도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앞으로 유구히 이어질 얼의 연계성 때문 이란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번 설날아침 차례 상을 차리며 손자 녀석이 손수 약과며 다식이며 과일이며 음식들을 손수 차례 상에 담아 올리겠다고 하여 거의 모든 진설음식을 나의 손에 포개어 들고서는 진상을 마쳤다.
 
그리고는 조상님께 올릴 술도 손수 따르겠다고 또 다시 손등을 포갠다.
 
의식이야 좀 순서가 바뀌면 어떠랴, 어린 손으로 술잔을 올리느라 시간이 좀 걸리면 어떠랴, 절하는 순서를 몰라 넙죽 넙죽 배를 깔고 덜렁 대는 모습에 웃음이 좀 터져 나오면 어떠랴 싶어 유쾌한 분위기 속에 축제 같은 차례를 마쳤다.
 
그렇구나! 이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셔 조상님이 되셨으매 생전에 회초리를 내리시고 잘 되 거라 일러 주시며 오늘에 내가 있기 까지 노심초사 하시며 유구한 세월동안 그 얼을 내게 심어 주셨기에 오늘같은 유쾌한 설날이 있구나! 라고 생각 했다.
 
감히 내가 그 조상의 빛난 얼을 덥석 정리하는 우매한 인간이 될뻔한 뜻 깊은 깨달음 이었다.
 
언젠가는 우리 손자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의 얼을 정리하려 할 것 이다.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정리할 추억꺼리를 만들어 물려주는 것이 명답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설 차례 상을 차리며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할아버지를 이어 조상의 얼을 깨닫고 지켜나가는 지혜로운 손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설날아침에 세배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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