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이란 다큐멘터리 방송이 있다. 

 
집과 그 집을 닮은 주인의 재미있고 생기 넘치는 즐거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공간 디자인 곳곳, 소소한 소품들과 가구 배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쁘고 열심히 살아 더 늦기 전,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가족과 나 자신이란 생의 온도를 오롯이 높이며 살아가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사람들을 찾아 건축 전문가 탐방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을 들여다보는 정겨운 시간이기도하다.
 
‘빌리다‘는 ’나중에 갚거나 돌려주기로 하고 얼마 동안 가져다 쓰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차압‘과 같은 차(借)에 대한 생각이 그리 좋지 않은 어려운 민생에게 빌리는 일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빚을 지고 살 수 없는 세상인데 빌리다니, 그것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풍경을 무상 임대하여 호사를 누리는 크나큰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차경’이다.
 
넓은 통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밖’을 상상해보자. 가깝게는 잘 가꾼 정원이나 앞마당에 핀 꽃들이 더 없는 행복감을 주고, 운무 낀 먼 산세(山勢)의 절창을 보며 회귀하는 자연인이 된다.
 
겨울비 소리로 음원을 다운 받지 않고 옛 가요 ‘애수의 소야곡’에 잠시 귀 흔들어도 좋겠다. 한 번씩 오는 계절의 감수성은 인간의 감정과는 다르거나 같을 수도 있는 모호한 발작이 있다.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혼돈의 표현들은 비와 눈, 바람이란 이름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그 ‘경계’란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삶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만끽하는 것이다." “나도 밥 아저씨 같은 인생의 선배가 있었으면 좋겠다.“ 청소부 밥의 책장을 넘기기도 전 이미 내게 말해 버린 사람이란 풍경들이여.
 
청소부 밥의 차례 프롤로그 ‘어느 누구도 잠들 수 없네.’가 12페이지에 있다.
 
겨울비가 봄비처럼 이리 삼삼하게 내린 기억이 없다. 낡은 집 베란다에 조금씩 비가 새는 천정을 보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차경’을 앓는 대신 빗소리를 들으며 꿈 깃을 수놓는다. 문득 황진이의 시 ‘꿈’ 이 그립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난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마음 안에 둔 차경과 소리의 두 양상이 차렵이불처럼 폭신하여 긴 겨울밤은 더 노닐어도 좋겠다.
 
어화둥둥 정말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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