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가족사진 한 장을 한동안 보고 있자니 수많은 음성과 그림들이 사진위로 마구 스쳐 지나간다. 50년 전 농익은 역사가 서려있는 누이의 결혼식 날 찍은 가족사진을 접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자형께서 앨범 속에서 발췌하여 스캔한 사진 한 장을   SNS를 통해 날려 주면서 우리가족 모두는 기나긴 역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미숙하기만 했던 나의 모습과 평온했던 어머니 아버지 아직은 젊음이 다분한 고모와 건장하신 고모부, 그리고 미국으로 가신 세분 이모님을 빼곤 유일하게 국내에 계신 둘째 이모와 동생들의 모습이 많이 애 띈 것은 그저 순수함 그대로의 대명사 이다.
 
더러는 기억하기 난해한 얼굴들도 섞여 있다. 꽤나 오랜 세월동안 내왕이 없었음을 입증한다. 청순하고 고왔던 누이의 미소와 자형의 듬직함이 가장 두드러진다. 70년대 다소는 어색한 패션들이 경이롭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른들도 보이고, 단촐 했던 추억의 트레이닝복도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외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누이가 엄마와의 애틋한 시간을 많이 하지 못하고 시집을 간다는데 어머니는 다소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아마도 결혼식 날을 받아 놓으시고는 편한 잠을 이루시지 못 하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평소 말씀이 없던 아버지께서는 애써 다문 입술이 그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듯 살짝 시선을 내리셨다.
 
이른 새벽부터 손님상에 올릴 각종 음식들을 차리시고는 서둘러 예식장으로 향하셨고, 나와 동생은 리어카에 하나 가득 음식을 싣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20여리가 넘는 시내 예식장 옆 식당까지 운반하면서 쌀쌀한 날씨에 손끝이 아려 왔던 기억과, 도착하니 추운 날씨에 잡채면발이 일부 얼어있었을 때 마치 운반을 잘못 하기라도 한 듯 동생과 나는 어색한 눈빛으로 주고받던 대화들이 너무나도 역력히 남아 있었다.
 
우리들은 물론 부모님들도 처음 치루는 혼례를 앞두시고 얼마나 많은 밤을 말씀들로 채우셨을까 생각해 보려 하니 이미 지금은 현실을 뒤로 하시고 영생 하셨지만 표정 속 의미와 생각들이 자막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우리네 삶의 어제와 오늘이 길고 짧은 대화들로 엮어지고 있음을 활동사진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시간과 세월 속에 발효되고 농 익어가는 순간들을 사진 한 장에 이렇게 담기란 참으로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앨범 속 많은 사진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살면서 그 대화를 들어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삶의 역사들을 짭짤하게 기억하고 숙성 시켜 가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화석처럼 단단해진 사진 몇 장 꺼내어 들고 그 시절 그 시대와 추억의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한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사진 속 그날처럼 진솔한 대화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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