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빠진 뻘 위로 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저만치서 밀물 떼가 아장아장 겹겹이 밀려들어온다.  ‘어디 갔었니? 너희도 멀리멀리 갔다가 때가 되어 돌아오는거니?’ 밀물떼가 돌아오는 모습은 명랑하다.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에 출발해 홍성 남당항 선착장 매표소에 앉아 죽도 가는 배를 기다렸다.  휴일을 맞아 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가는데 육지에만 들러붙어 사는 나에게 섬과 배는 낯선 풍경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쯤 들어가 섬에 닿았다. 나무로 만든 둥근 길을 한바퀴 걸으며, 네 쪽으로 나눈 사과를 베어 물며 웃으며 떠들며 우리는 섬 주위를 자유롭게 돌았다. 해안가 마을회관 옆 벚나무에 사방으로 꽃이 피고 있었다. 놀라운 꽃나무를 내 마음에도 심었다.
 
일상의 번민조차 쓰레기통에 버린 단조로움으로 느리게 느리게 여유를 부린다. 대나무 숲과 나무계단을 지나 풍력발전기와 올망졸망한 섬들이 이웃한 그림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자로 생활하는 나는 네모난 건물에서 땀과 눈물을 뿌리다가 물과 태양에게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바다와 태양과 달이 작용하는 별에서 나는 생활을 겨우 견디며 팍팍하게 시간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느리게 느리게 감상했다.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가을햇빛의 고요함도 함께 들었다.  
 
‘희언자연’이라고 “말이 적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쓴 고전이 생각난다.
자연은 말이 없었다.  바람은 나의 살갗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비바람으로 사정없이 때리기도 하지만 그냥 들려주고 보여주기만 한다.
 
점심때엔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굴밥집에서 굴전을 먹었다. ‘나문재’에 들려 산책을 하고 어둑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녁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유리창 너머로 눈길을 주면 줄곧 달은 환하게 옆에서 나와 함께 다녔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밝은 달이 아까워 호수 곁에 차를 세웠다.  시월의 호수에 비친 달과 저 하늘에 달을 함께 잡아 사진에 담느라 요리조리 방향과 구도를 잡아본다.   
 
눈에 담아 마음으로 먹은 바다와 달의 관계가 느닷없이 궁금해졌다.  집에 가서 집중해서 읽어보리라, 궁금증이 발동해 눈을 초롱초롱 떴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만은 내가 바다이고 내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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