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빗소리를 들으며 선잠을 잤다. 

 
붉은 벽돌 건물이 젖어 붉은 물이 흐르는지,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며 노란 눈물을 흘리는지, 국민이 든 촛불이 살아있는지, 꽃 사과나무 아래 놓인 길고양이 밥그릇 빗물만 그득하게 고여 있는지, 아무것도 내일이 아니라고 복잡한 생각을 휘저으니 어느새 아침이다. 
 
창가에 곱게 퍼지는 햇살이 간살스럽기도 하다, 
 
밤새 물상을 후려치던 헤비 메탈 그 강렬한 사운드 무대가 사라지고 다시 먹이를 찾는 새들과, 물기를 말리는 나뭇잎과, 간간히 걸린 태극기가 창공에 나부끼는 개천절을 맞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의 목적과 주어를 생각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존엄한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이 건국이념인 개천절이 무색하게 이제는 시민이 든 촛불조차 불꽃의 방향과 의미와 진정성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혼란하기만 하다.
 
영국 요크셔 황량한 산지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는 언쇼가의 저택에서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의 고된 삶이 시작된다. 사랑에 배반당하고 성공해 돌아온 청년은 복수로 마무리 하지만 행복은 그의 편이 되지 않는다.
 
고전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으며 지금 세상이 폭풍우 세차게 치는 공간적 배경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간하고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가장 우둔하고 위험한 시간은 아닌지 하늘 열린 날을 가만히 독대해 본다.
 
태풍이 연이어 자연 재해를 일으켜 생겨나는 물적 손실과 사람의 목숨, 도덕성과 자아를 상실한 인격체가 벌이는 상식 이하의 반인륜적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사이사이 따뜻하고 훈훈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뉴스를 보면 마치 인간 세상이 허물어져가는 경계에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침울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태풍에 열매를 다 잃고도 속으로 우는 나무를 본다.
 
다시 살아가야할 시계(時計)의 순리에 순응하는 슬프지만 의연한 생의 질서다.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의 행동이 혹여 패를 움켜잡기 위한 졸렬하고 조악한 교묘한묘수는 없는지 빗방울을 이겨낸 햇살, 푸른 하늘, 흰 구름, 또한 강아지풀과 서민같이 이름 없는 풀꽃에게 물어볼 일이다. 
 
노란 국화꽃 화분이 배달되어 왔다. 사람들은 꽃을 보며 가을을 느낀다.
 
잠시 소란스런 세계를 내려놓고, ‘모두가 나뭇잎이 물들어 가는 것을 여유 있게 앉아서 감상해야 한다’ 는 엘리자베스 로렌스의 말처럼 공존의 안부를 묻는 손을 서로 내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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