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주고 싶다고?

선물은 필요치 않아
네 얼굴과 네 목소리와
너의 웃음이
나에겐 선물이야.
너 자신이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선물이야
네가 그걸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딸 바보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자신의 어린 딸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존재만으로 큰 기쁨이고 큰 선물이었던 아기였을 적 자녀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은 부모에게 심장이 터질 것같은 말로 다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선사한다. 
 
어느날 집에 돌아왔을 때 함박웃음으로 달려와 내게 안기는 아이를 안아주며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했다. “너는 평생할 효도를 지금 다하는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다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아이와 똑같이 어떤 설렘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모종의 긴장감을 갖기도 했다. 어느 날 몸에 비해 크게 느껴지는 가방을 매고 등교를 하는 뒷모습을 보다가, 이 아이가 자라나서 매야 할 인생의 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마냥 예쁘기만 했던 아이들은 어느덧 커서 한 아이는 벌써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고, 터울이 진 둘째는 중학생이 되었다. 큰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아이조차 이제는 부모를 찾기 보다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고, 어디 여행을 가자 해도 시큰둥이다. 큰 녀석은 사회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자기관리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작은 녀석은 아직은 어린티가 난다. 부모 말도 잘 안듣는다. 뭐라고 혼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면 대들지는 않지만, '아빠 나 지금 화났어'를 분명하게 얼굴에 그린다. 집에 오면 공부는 안하고 스마트폰과 유튜브 동영상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고 혼을 낸다. 게이머나 유튜버를 장래희망 란에 써넣은 아이를 보며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시대가 바뀌고 그 세대에 맞는 꿈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과거의 잣대로 현재와 미래를 재단하는 꼰대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녀의 잘하는 것보다 잘 못하는 것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부모란... 이 아이를 어떻게 지지해주고 응원을 해주어야 하는거지? 부모 노릇하는 것도 기도가 참 필요함을 느낀다.
 
몇해 전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크게 안도하며, 그래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한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때 그 마음은 어디로 간건지, 나태주 시인은 딸이 아기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딸바보로 산다는데, 나는 여전히 아이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로 답답하다. 
 
그래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너무도 확신하는 탓에 혼이 나도 당당한 아이의  모습이 좋다. 자녀가 성장해 가면서 부모도 그만큼 자라는 것 같다. 여전히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아이가 점점 더 성장해감을 느끼며, 이제 키가 별 차이 안나게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며 껴안아보며 다시 한번 마음으로 말한다.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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