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빠른 추석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 추석 당일 내려오느라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래도 바쁜 세상살이를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가 명절을 맞아 찾아뵐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차도 막히고 힘든데 뭐 하러 오냐며 늘 자식 걱정이 먼저이지만,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지요. 구구절절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뭔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음으로 평안하고 푸근한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인 것 같습니다. 

 
저도 자식을 낳고 살아가면서 때때로 부모님이 제 나이 때는 어떠셨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늦게나마 중학교에 다니시는 것이 못 배운 한이 남아 그러셨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저희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때 아직 젊으셨던 어머니는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그 이전 어머니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동생 돌보랴 농사일 도우랴 학교에 다니지 못했을 때 심정은 어땠을까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편히 쉬시지 왜 사서 고생하시냐고 동생들의 걱정 어린 이야기에도, 저는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응원을 드린 것입니다. 영어다 수학이다 과학이다, 이젠 오카리나까지 연습해서 시험 봐야 한다고 푸념을 하셔도,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하시는 만큼만 하시라고 말씀드릴 뿐입니다.
어차피 공부는 끝이 없으니 교양을 넓혀 간다 생각하시고, 같이 공부하는 동급생들과 즐겁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이렇게 사 남매 잘 키우신 것만으로도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이 이룩한 것에 부족하지 않은 일을 하셨습니다. 
 
한 부모가 열 자녀는 돌볼 수 있어도 열 자녀가 한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합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많은데 다 갚지 못하고 사는 것이 늘 죄송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으로 저희를 길러 주시고, 지금도 늘 기도로 지원해 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 훗날 하나님 앞에 가셨을 때 그 무엇보다 신앙으로 양육하고 기도로 도왔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보람이고 칭찬받는 일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위의 글은 필자가 지난 추석 전주 본가에 내려갔다가 어머니를 위해 쓴 편지글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사셨는데, ‘계집이 무슨 학교에 가느냐며 동생들이나 볼보고 집안일 도우라’라는 외할머니의 불호령에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셨다. 자녀들이 다 장성한 후 지난날 배우지 못한 한을 푸시기 위해 어머니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셨고, 이제는 도에서 운영하는 성인들을 위한 중고등학교 과정에 재학 중이시다. 
 
그 학교에서 이번 추석 명절과 관련하여 과제를 냈는데,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사정이 있어 짧은 시간 머무르고 평택으로 올라와야 했지만 밤늦은 시간을 이용해 어머니를 위한 숙제를 해 드렸다. 그리고 이번 월요일 새벽에 다시 전주 본가에 갔다 왔다. 아버지의 병원 검진에 동행하고, 어머니를 학교에 모셔다드리고, 집안에 고장 난 문들을 고쳐드리고 왔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간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자식들은 작았다가 점점 커간다. 그런데 부모는 컸다가 점점 작아져 간다. 아니 언젠가는 더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신 이들은 같은 심정이리라. 내세의 소망을 믿지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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