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누나”
 
가을을 불러오는 선선한 바람결에 우리 동요 중 ‘가을’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계절은 어김없이 때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아직 푸른 잎이 붉은 치마를 갈아입을 때는 아니지만, 이제 서서히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여름내 푸르렀던 초목들은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할 것이다. 
 
가을과 관련한 성경의 기록은 별로 없다. 가을을 나타내는 구약 히브리어 용어는 ‘호레프’(choreph)인데, 문맥에 따라 가을과 함께 겨울의 의미도 있다. 팔레스타인 날씨가 크게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고, 우기에 해당하는 가을과 겨울은 그 경계가 불분명한 것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가을은 우리에게 수확기에 해당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파종기(10월~11월)에 가깝다. 그래서 가을이 주는 이미지도 다르다. 구약성경 잠언을 보면,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잠 24:4). 가을에 파종하기를 게을리하면 수확할 게 없다는 말이다. 
 
가을이 우리처럼 수확기이든, 아니면 팔레스타인처럼 파종기이든 부지런함이 요구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우리 옛말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고 했다. 주로 농사를 짓던 옛날에, 제 때에 추수하려면 일손이 부족하여 부지깽이 하나라도 일을 도와야 할 만큼 가을은 분주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을은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든 히브리 백성에게든 이모저모로 부지런을 요구하는 계절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구약성경 욥기에는 가을을 나타내는 ‘호레프’라는 단어를 ‘한창 힘이 넘칠 때’ 혹은 ‘내 인생의 전성기’(the prime of my days)의 뜻으로 사용하였다(욥 29:4). 가을을 ‘인생의 전성기’에 빗댄 것이 흥미로운데,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고 힘을 내어 일해야 할 시기라는 이미지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종종 우리가 ‘인생의 가을’을 전성기가 지나버린 어디쯤으로 여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을은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무들과 꽃들을 선사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우리를 분발하게 하고 부지런하게 만드는 무엇을 가졌다. 무더웠던 여름의 휴가철도 지나갔고, 각급 학교들은 개학해서 본격적인 2학기를 맞이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한해의 넉 달이 남아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마음에 담아놓았던 계획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 가을을 ‘나의 전성기’라 여기며 심기일전, 더 분발하는 기회로 삼으면 참 좋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그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 그리고 오늘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란 말을 기억해 보자. 조급해만 하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뭐가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지를 따져보며 이 가을 새로운 결단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지금이 새로운 전환점과 분발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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