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목소리가 바뀐 천등산 박달재를 넘는다. 여전히 구성진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래전 아날로그의 지글거림이 희박해진 느낌이다. 다만 노래의 주인이 바뀌었고, 풍이 바뀌었고, 곡조가 변하였지만 꿋꿋하게 한곡만 틀어주던 박달재 휴게소의 전통은 변함이 없었다. 

 
영서와 영남사람들이 한양을 가기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했던 회한의 고개였고 시멘트 주산지인 단양 제천의 젖줄이기도 하였다. 특히나 중부 수도권과 영서를 오가는 모든 이들이 이 고개를 넘지 않고는 갈 수 없었던 요지이기도 했다. 
 
과거보러 한양가신 낭군을 기다리다 목각인형이 된 금봉이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멀고 먼 한양천리 아득한 수심에 타 들어간 금봉이의 마음처럼 화물을 가득 싣고 구부러지고 가파른 비탈길을 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화물차 운전사의 마른 목도 마음도 달래주던 곳 이었다.
 
지금은  터널이 생긴 지가 오래돼서 고개를 넘지 않고 차들이 소통하고 있지만 터널을 지나는 이들 조차 회심의 마음으로 이 고개를 지나치게 마련인 곳이다. 마치 고개마다 굽이마다 서린 삶의 여정을 연상하게 하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님을 기다리던 금봉이의 애절함이 우리네 가슴속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생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곡절 없이 넘은 고개 있으랴만 이곳 박달재를 넘나들던 세인들의 우여곡절 또한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더위를 내려놓고 옛 박달재를 한번 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여 방향을 돌려 박달재로 접어들었다. 
 
정상 휴게소에 잠시 머물며 노래 십여 곡이 연달아 고개를 넘도록 상념에 들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랫말을 되 뇌이다 고개마다 굽이마다 집을 짓는 꿈 많은 왕거미였던 지난시절을 돌이키며 수없이 넘어왔던 인생의 고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슴이 터지도록 울기도 했고 목이 메도록 소리도 쳤기에 여러 굽이의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올 수 있었고, 지금 또 다시 한 고개를 넘기 위해 박달재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조금은 지치고 지리 했던 삶의 공해처럼 매쾌 해진 공기를 피해 이 고개를 넘으며 마음속 열기를 잠시 식혀본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제는 익숙한 수단들로 소리 없이 고개를 넘어 보련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고개를 넘어 새로운 고갯마루를 향해 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넘으려 한다.
 
다만 힘들고 지루한 방법 말고 회상과 비움의 마음으로 작은 구름조각 만큼씩 짐을 내려놓고 가파르고 굽이진 아득한 정상 보다는 터널을 경유하는 지혜로 완만한 고개를 넘고 싶다. 
 
근심들이 무수히 넘나들던 천등산 박달재 정상에서 또다시 가슴에 시동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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