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아버지는 올해 80이 넘는 고령으로 고혈압, 당뇨 등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갑역시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나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막노동으로 근근이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과 갑의 아버지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민을 가 있는 갑의 큰 형이 구입한 것으로 명의도 갑의 큰 형 앞으로 되어 있습니다. 갑의 큰 형은 이 집말고도 다른 재산도 많고 한데도 아버님을 모시고 있는 갑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 집을 팔아야 한다며 집을 비우라고 독촉합니다. 갑의 큰 형은 이 문제로 갑과 몇 차례 다투고 난 후 오히려 감정이 더 나빠져 소송이라도 할 태세입니다. 갑과 갑의 아버지는 집을 비워주어야 할까요.

해설)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원래 건물의 소유자는 그 소유권에 기해 그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퇴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214조). 물론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그 건물을 점유할 만한 정당한 권한이 있다면 이러한 퇴거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례의 경우 갑과 갑의 아버님은 갑의 큰 형과 전세계약을 체결하였다거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등의 사정은 엿보이지 않으므로 건물을 점유할 법적 권한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따라서 갑의 큰 형의 요구는 법적으로 일응 타당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률상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례에서와 같은 권리행사는 우리의 윤리에 비추어 부당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분한 자력이 있는 사람이 고령의 부모와 형편이 어려운 동생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을 특별한 사정도 없이 나가라고 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윤리의 관념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입니다. 이러한 경우 갑이나 갑의 아버님께서는 민법 제2조 제2항의 권리남용의 항변을 주장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례와 유사한 사안에서 우리 대법원은 “부양의무 있는 자(子)가 특별한 사정도 없이, 또한 부(父 )의 주거에 관하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단지 이 사건 주택의 소유권자임을 내세워 고령과 지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달리 마땅한 거처도 없는 부(父 )에 대하여 이 사건 주택에서 퇴거를 청구하는 것은 부자(父子) 간의 인륜을 파괴하는 행위로써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한편 원고는 동생과 생계를 같이하지는 아니하므로 위 동생에 대하여 부양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동생은 스스로의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부모를 모시면서 그 부양의무를 다하고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도 생활을 함에 있어 동생과 그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달리 마땅한 거처도 없는 동생과 그 가족에 대하여 이 사건 주택의 명도를 청구하는 행위 또한 인륜에 반하는 행위로써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96다52670 판결).”라고 판시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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