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왕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고, 시인이었고, 음악가였다. 그리고 평생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시를 지었는데, 그중 시편에서 유일하게 관악기에 맞춰 부르게 되어 있는 시편 5편을 보면 평소 그의 기도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시 5:1). 꼭 들어주셔야 한다는 간절함, 그리고 ‘심정’이라는 히브리어 원어에 담긴 대로 깊숙한 마음의 소원이 너무 간절해서 나도 모르게 입으로 읊조릴 수밖에 없는 절절함을 기도로 토해낸다. 그의 기도의 특징은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듣는 존재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 5:2).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나의 왕이며 하나님이시다. 현직 왕이 ‘나의 왕’을 부른다. 하나님을 자신이 섬길 주인이요 믿어야 할 절대자로 인식한다. 
 
간혹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마치 알라딘 램프를 문지르면 ‘펑!’하고 등장하는 지니로 착각할 때가 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소원을 말씀하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치 기도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시종처럼 여긴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이루어주는 알라딘 램프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이며 우리는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자의 올바른 자세이다. 
 
다윗은 아침에 기도한다고 말한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아침이란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의 시점이다. 아침에 기도한다는 것은 꼭 아침이라는 시간을 의미하기보다, 모든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에서 사용된 ‘기도’란 말은 원래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가지런히 벌여놓는 것을 뜻한다. 즉, 기도란 모든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행동이 앞서지 않고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아뢴다는 의미를 가진다. 평소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야 하나님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말한다. 기도하고 바란다는 것은 중요하다. 실컷 기도하고 나서 무엇을 기도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기도에는 절박함도 믿음도 없다.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셔야 한다는 절박함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결여된 것이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간절한 기도 후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고 하였다(합 2:1).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기도자는 ‘3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3기’란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말에서 앞의 ‘기’자만을 딴 것이다.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의 별명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삼상 13;14, 행 13:22). 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 다윗은 평생을 기도의 사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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