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한 구석에서 울어대던 전화벨소리보다 새소리가 교향곡인 곳 강원도 영월 장릉 뒤에 자리한 물 무리 골 삼림욕 길로 접어들면서 발바닥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수행의 길을 걷는다.

 
무거웠던 머릿속 상념들이 증발한  탓인지 깃털 같은 체중이 계곡바람에도 방향을 바꿀 듯 가뿐하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둘레 길을 걸으며 이제 것 새 길을 개척 하듯 달려온 시간들이 낯을 가리는  순간들을 외면하면서 길거나 굽었거나 경사가 졌거나 상관하지 않고 전나무 숲길을  생각 없이 걷는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내 앞을 질러 내 닫고, 또 누군가는 나를 따라잡을세라 어슬렁거린다.
 
30년 공직을 마치고 산 정상에 서서 만세를 부르는 진평이 친구나 퇴직과 함께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전국을 투어중인 봉열이 친구.
 
시계바늘이 다 달은 정년의 정점에서 물 무리 골 둘레 길에서 수양 중인 나의 수행길이나  방향과 생각이 다르지 않다.
 
이제 숙련된 세상의 기술들로 수양에 정진하면서 듬성듬성 비어있던 생각들을 골라내어 수선해보는 시간 영월 물 무리 골 산책로 허름한 벤치에 앉아 시간과 소리들을 정렬하고 있다.
 
이쯤엔 갈라지는 구령소리보다 구차한 변명보다 명상이 무기다.
 
새소리 매미소리 뒤 엉킨 신선메뉴 물 무리 골 명상!
 
빗나간 나뭇가지 하나 배반당한 풀 섶 한줄기조차 앞길을 방해하지 않는 해방의 둘레길.
회전의자보다 반쯤 삭아 부서져 내린 나무 벤치가 포근한 이유를 터득하기엔 아직은 시차가 있어 상계하기 난해 하지만 방랑시인 김삿갓의 발자국을 따라 영월로 회향한 공식들을 새들에게 묻고 있다.
 
줄 곳 주인이 없던 다인승 나무 흔들 그네 한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허락도 없이  내 몸을 공중에 띄우고 좌표 없는 방향으로 흔들며 길을 묻는다.
 
물 무리 골 둘레 길을 하염없이 돌고난 후 말하리라.
 
삶의 방향이 해를 따라 서쪽 이었다면 쉼의 방향은 바람을 거스른 동쪽이려니 개미와 바람과 새들의 방향은 불규칙 한데 오로지 전진만을 신의 방향처럼 믿고 산 인생들을 위해 나침반이 필요 한 순간 수행의 험로를 또다시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람 방향으로 걸음을 돌려 본다.
 
그네 옆 정자에 반쯤 걸터앉은 노인 봉사자들을 위해 숲 해설사는 나폴레옹의 네 잎 크로바의 일화를 들려주며 행운을 빌고 있다.
 
능선 저쪽 뾰족한 새소리가 바람사이 틈을 타고 사람 소리를 물 타기 하듯 내려 쏟고 있다.
 
명상이 방향을 잃고 꽃향기를 따라 가자하는데 소리와 향기와 바람의 방향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가 난해한 시점 이다.
 
그네 위로 온기만 남겨두고 지나간 먼지자국을 툭툭 털고 일어나 오늘은 새들의 방향으로 걸어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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