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잃고 신분증도 잃었다. 나의 또 다른 손처럼 열고닫기에 부지런했던 수첩도 없어진 것을 다음날 아침에서야알았다.
 

  십년 넘게 손에 닳아 나의 일부가 된 주황색 지갑은 군데군데 색이 떨어지고 볼 품 없지만생활 속 친구처럼 언제나 가방에 있었다. 나의 부주의로 잃은것이라 당황스럽고 불안해 며칠이 지나도 산만하다. 눈에 선한 게 꿈속에서라도 곧 잡을 것만 같다.
 

  혹시나 희망하며 우편함 앞에서 기다렸다. 어떤 마음씨 고운행인이 주워서 우편함에 넣어줄 수 있다고 하루 동안은 굳게믿기도 하였다.
 

  지갑을 잃기 전까지의 행로를더듬어 몇 번을 되짚으며 두리번거린다. 버스정류장 의자며장미덩굴 속이나 쓰레기통을뒤지다가 나를 유심히 보는 한할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그 분은 내 모습이 몹시 피로해 보였는지 배낭에서 물병을꺼내 내게 주었다. 난 물병을 받아 마시고 묵묵히 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 풍경은 저절로 만들어진나만의 현장이다. 구름이 형체로 있다 흩어져 제멋대로 떠 가듯이 생활은 잃음의 연속이 아닌가,
 

  물건을 잃어도 이 지경인데사람마저 잃어가며 나는 앞으로 간다.
 

  엄마를 잃고 친구를 잃고 그과정을 한 풀이 하듯 종이에 쓰기도 한다. 애초에 내 것 이라는것은 깨어지고 멀어지고 헤어진다. 사건 전의 모습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고 잃어가면서 나를 챙긴다.
 

  “사람들은 끝없이낡고 늙은 것들로 달려간다거기서 세월의 흔적을 찾으려안간힘을 쓰고세월의 흔적을 찾으면 환호하고끌어 안는다“  - 책 김열규외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에서
 

  행정복지센타에 가서 신분증분실 신고를 하였다. 다시 찍은사진을 내밀며 나의 이름과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서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더러는 잃었다가 찾고그리고 갱신한다.
 

  처음은 잃었지만 지금은 그 상실을 풀어서 스스로 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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