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 씨는 탈북민이다. 평택에서 10여 년을 거주한 이제는 엄연히 평택시에 세금을 내고 있는 평택시민이다.

  평택시 거주 탈북민이 1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유홍 씨는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승낙했다고 전했다. (편집자주)

  20대 중반 한국에 들어와 사회복지를 전공한 유 홍 씨.

  그가 알고 있는 바 평택 거주 탈북민은 1천여 명 정도라 한다. 기자가 생각한 수치보다 꽤 많은 탈북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남한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회담을 가졌다.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성사된 회담이다.

  두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는 시민들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누군가는 희망의 미소를 띠우기도 했다. 탈북민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두 정상의 만남에 많은 사람들이 곧 통일이 될 것처럼 생각을 하시겠지만, 우리가 조금은 한발자국 떨어져서 냉정한 마음으로 지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1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을 본 시민들의 가슴은 유홍 씨의 말처럼 뜨거웠다. 곧 통일을 이룰지도 모를 것 같은 부푼 마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상회담을 바라봐야할 필요가 있다.

  유홍 씨는 2007년 탈북했다.  중국에서 같이 넘어온 동생과 헤어지고 한국으로 온 유홍 씨는 곧장 평택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평택은 그에게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거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같은 민족이라 해도 언어와 문화에서부터 많은 것들이 달랐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가 된 것처럼 걸음마를 배우듯 남한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북한에서 이미 교육을 다 받았지만 남한에서의 교육 수준과는 차이가 많았다고 한다.  남한에서의 20대 중반은 이미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니고 있는 정도이지만 그가 알고 있는 수준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컴퓨터 하나 다룰 줄 모른다 핀잔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북한도 비슷한 수준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북한에서의 교육수준과 남한의 교육수준과 차이가 많이 나요. 북한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 아니고서는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죠”문화도 많이 달랐다. 성인이 돼서까지 북한에서 살았던 유홍 씨는 이미 북한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반면 개인주의, 자본주의인 남한은 그에게 적응하기 힘든 새로운 문화였다.  남한에서의 생활 초기에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탈북민이라는 프레임에 편견과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탈북민을 외국인보다도 안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아예 조선족이라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이곳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남한으로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6년간 다시 공부를 해 검정고시를 치렀다. 그리고 더욱 인정받고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해 지금은 북한과 탈북민을 알리기 위한 강의도 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공부를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도 금수저, 흙수저가 있어요.  근데 북한에만 있는 또 다른 계층이 하나  있는데 흙수저 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흙수저 보다 못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도 없고 그 노력의 기회 자체도 못 가져보는 거예요.

  북한에서 억압은 그냥 생활이에요. 억압은 태어날 때부터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정말 힘든건요...”우리가 탈북민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살길래 저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탈북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하지만 그들이 탈북을 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생존이다.

  탈북은 식량난과 굶주림,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가 남한에 와서 겪었던 편견의 시선, 혼자라는 외로움,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등은 그가 북한에서 겪었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통일교육을, 성인을 대상으로는 탈북민들에 대한 강의를 주로 한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과 주민들과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탈북민들이 계속 늘어가고 현재는 탈북 청소년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안학교를 찾는다. 하지만 더 많은 남한의 청소년들과 만나고 그들과 같은 정상적 교육을 받는 것이 오히려 탈북 청소년들이 빠르고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는 말한다.

  현재 평택시에는 탈북민들을 위한 공식적인 모임의 자리가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YMCA 주관 하나센터 외에는 없다. 그리고 하나센터는 이제 막 남한에 오게 된 탈북민들을 위한 도움을 주는 곳일 뿐 평택시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을 위한 장소는 없는 셈이다. 유홍 씨는 탈북민들이 소소하게나마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다문화가정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다문화로 생각하고 또 저희도 다문화영역으로 분류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탈북민들도 비슷하게 생각하실 거예요. 저희를 굳이 ‘새터민’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분류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북한에서 이탈한 주민’들이 맞아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에게 지원을 하고 보살펴 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외국인이 아닌 같은 한국사람으로만 바라봐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의 말처럼 탈북민들 역시 우리랑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곳에 살아가는 주민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그들이 우리와 섞여들기 위한 의지, 사회의 작은 변화가 정상들의 만남보다 더 빠른 평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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