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일 년 열두 달 중 가운데 든 달이다. 그래서인지 날씨로 보아서는 봄 같기도 하고 여름 같기도 해서 봄의 따사로움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 여름의 뜨거움도 그다지 심하지도 않아 여름에 속하는 달이긴 하지만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달이라 할 수 있다.

  6월이 오면 특히 70~80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에는 여러 가지로 떠오르는 슬픔과 고통의 기억이 있다. 그 첫째가 6.25 전쟁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아 독립을 찾는가 했더니 남북이 분단되어 각기 정부를 수립하고 제대로 질서도 잡히지 않은 채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 생활 중에 가족과 흩어지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던 고통을 겪어야 했다.

  3년여의 이런 전쟁의 고통이 종전도 아닌 휴전협정으로 전쟁은 멈췄으나 전쟁으로 인한 폐허화 되다시피 한 국토와 생활 터전, 거기다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나라의 산업이래야 농업위주였는 데다 그나마 쌀 생산량이 절대부족이어서 심각한 생계에 어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이 시절에 춘궁기, 보릿고개, 초근목피 같은 말이 새겨 나올 정도였다. 춘궁기란, 가을에 수확한 쌀이 겨울을 지나면서 거의 다 떨어져 남은 기간 보리 수확이 되는 시기까지 4~5월 봄 기간 동안을 견디기가 어려운 시기를 말하며 이 기간을 보릿고개라고도 했다. 양식이 떨어지다 보니 하루 세끼 밥 먹기가 어려워 굶다 못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했다 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란 말도 생겨난 것이다. 이 시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걸식으로 유랑하는 거지도 많았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춘궁기(春窮期), 보릿고개, 거지라는 말조차 생소할 것이다.
 
  6월 5, 6, 7일 경에는 일 년 24 절후 중 9번째로 망종(芒種)이 들어 있어서 망종에는 보리를 베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논에 벼를 심는다는 뜻을 가진 절후이다. 그래서 보리수확으로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겨 가을에 쌀 수확을 할 때까지 식량 확보를 하는 동시 벼를 심는 바쁘면서도 희망적인 시기인 것이다. 한편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으로 4월 5일을 전후한 청명과 한식날은 손(귀신)이 없는 날이라 하여 조상의 묘소에 잔디를 관리하며 성묘를 하고 망종 날에는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매년 6월 6일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6.25전쟁에 참전하여 산화한 전몰 장정의 영령을 추모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동시에 그 유가족에게 전 국민이 함께 조의를 표하는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1956년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을 창설하고 전물장정들의 유골을 안장 실시했던 그 해 4월에 제정해서 그 해 6월 6일부터 실시하게 된 것이다. 현충일을 6월 6일로 제정하게 된 배경은 1956년 제정당시 6.25를 상기하고 망종 날에 조상에 제사를 지냈다는 역사적인 풍습을 고려하여 그해의 망종날인 6월 6일을 현충일로 택했다 한다.

  70여 년 전 가난과 굶주림과 전쟁의 고통이 기억으로 남은 6월, 이제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뤄지고 평화와 번영의 길이 트인 6월로 맞이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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