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unity)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편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1대 목회자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이었던 아볼로는 2대 목회자였고, 그 후에 바울의 동역자인 실라, 소스데네 이런 분들이 목회자로 고린도교회를 섬겼습니다. 목회자들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위대한 평신도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연합이 교회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조상들로부터 나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나를 거쳐서 자녀들의 삶에 이어지는 시간이라는 씨줄이 있습니다. 또한 나의 형제자매 또는 친족 이웃들과 이루는 공간이라는 날줄도 있습니다. 교회 학교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어 있는 역사라는 씨줄과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에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본질이라는 날줄이 얽혀서 비로소 ‘존재’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연합이 즐거운 것,  또는 단단한 것이 되려면 서로가 ‘다름 속에 있는 진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랑의 눈은 연합을 생명력 있는 것으로 빚어냅니다. 우리의 부모님 또는 선생님들이 부족한 나를 믿고 바라보아 주셨던 그 눈으로 우리 안에 각종 ‘다름’들을 보아 낼 수 있다면 우리가 이루고 있는 연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 이 땅에서 그야말로 천국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사랑을” 더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연합을 가능케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쓴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씨앗을 심은 바울도 중요하고 물을 준 아볼라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종 연합들이 인간들 사이에 진행되는 의기투합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인간들끼리 만든 그 어떤 연합도 최종적으로 선한 것들을 빚어낸 일이 없음을 현대사는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출발했다고 할지라도 우리안에 이기심은 그 모든 연합을 바벨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모든 연합은 자라게 하시는 분을 기억할 때 비로소 지속적인 사랑의 연합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연합만이 비로소 복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봄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치 죽은 것 같았던 가지에 꽃이 만발합니다. 누군가는 꽃나무를 심었겠지요. 그리고 또 어떤 나무에는 열심히 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꽃나무들은 봄을 주시는 분, 따뜻한 바람을 주시는 그분의 손길 안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2018년 봄날에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도, 교회도, 평택 땅도, 이 나라 대한민국도 자라게 하시는분 하나님을 기억하며 날마다 꽃피는 봄날 되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한 명 준
서정교회 담임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세인폴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현재 서정감리교회
담임목사로서 감신대와 평택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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