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생각을 담은 그릇이라고 한다. 그 생각이란 바로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교양 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저런 그릇을 대하며 산다. 같은 그릇이라도 무슨 음식이 담기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진다. 가령 국그릇에 젓갈을 담았을 때 젓갈 맛이 제대로 나겠는가? 그렇듯 분명한 것은 같은 말도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우리는 모두 표준말과 경어를 배웠다. 따라서 경어와 상말 욕을 금기시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순진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약아져서일까? 욕도 배우고 막말도 쓰게 되고 그러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경어도 쓰는 이중적인 말솜씨를 보이며 성인으로 커왔다.

  그러나 요즘 와서 우리 사회가 온통 막말과 욕설의 사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순진해야 할 청소년 학생들 간에 오가는 말을 들어봐도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이지 말끝마다 x새끼, xx같은 ㅆ발음의 욕이 조사처럼 예사롭게 따라붙는다. 웬만한 어른들의 말끝에서도 흔히 듣는 소리다. 그래도 국회하면 교양과 학식을 갖춘 지성인들의 모임이 아니겠는가.

  그런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정 활동 중에 여·야 간에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마치 일반 대중들의 싸움판 못지않은 욕설과 난투극을 벌이는 광경을 흔히 본다. 욕설과 고성을 함께 쏟아 내며 노기와 격한 감정 섞인 말투와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과 노기와 감정을 자제한 말투에서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똑같은 문제 해결의 대화를 할 때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후자의 태도일 것이다.

  국회에서 하는 청문회 장면을 가끔 본다. 청문회(聽聞會)는 사전에서 보면, ‘국회 또는 행정기관 등이 중요한 안건을 심사할 때 증인, 감정인, 참고인으로부터 증언, 진술을 청취하거나 증거 채택을 위하여 여는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청문회라는 한자만 보아도 ‘들을 청’, ‘들을 문’, ‘모을 회’자 로 되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질문하는 국회의원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독기 어린 눈빛과 말투로 공격적이고 질타로 일관하기도 하고 증인에게 대답을 하게 해 놓고 진지하게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 원고만 보다가 갑자기 답변을 중지시키며 호통을 치기도 한다. 증인이 발언의 기회를 요구해도 일방적으로 차단시키며 오히려 자기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증인도 화가 나서 항변하려 하면 ‘여기가 어딜 줄 아느냐, 당장 나가시오’라며 고함을 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청문회 모습이다. 묻는 쪽이나 답변하는 쪽이나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감정을 자제하고 겸손한 말투로 주고받을 수는 없는지? 그래서는 안 될 지위에 계신 분들 중에도 그 막말을 마치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인양 서슴없이 하는데 그 인격이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량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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