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한 나절 햇볕에 겨울이 풀렸다. 우체국으로 난 길을 걷다가 재랭이 고개를 넘는다. 점을 치는 골목과 철학관이라 하는 이름의 간판들 가운데를 걷는다. 2월서 3월로 넘어가는 나는 이 고갯길 옹벽 위에 폭포수 모양으로 쏟아지는 영춘화 노란 무더기를 보았다. 꽃잎의 수는 여섯 잎으로 별모양이다. 긴 긴 겨울을 이기고 이렇게 꽃이 피면 어쩌나, 꽃의 마취
넬슨만델라와 더불어 남아공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분은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입니다.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가 어린 시절에 예수를 믿고 성공회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앞에서 키가 훤칠한 백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誰斷崑山玉)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어주었던고(裁成織女梳)견우님 떠나신 뒤에 오지를 않아(牽牛離別後) 수심이 깊어 푸른 하늘에 걸어 놓았네(愁擲壁空虛)“ 황진이가 지은 영반월이란 시다. 임을 기다리다가 반달을 보고 얼레빗을 하늘에 걸어 두었다는 절세의 표현을 하였으니 그 애련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다. 전주 한옥마을 찾은 지난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가느니라”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다. 세종대왕이 정인지·권제·안지를 시켜 짓게 했으며 1445년에 완성되었다. 뿌리의 깊이가 기둥의 근원이란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기둥이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유구히 한 뿌리를 이
다시 네팔에 갑니다. 교회로서는 8번째 방문이고 저 개인으로도 여섯 번째 방문입니다. 지난 2007년에 제가 섬기는 서정교회는 네팔 치트완에 신학교를 건축 봉헌하였습니다. 목회자를 꿈꾸는 신학생들 졸업식 올해로 5회째입니다. 17명이 입학하는 8기 입학생들의 입학식도 함께 진행됩니다. 10년 전 황무지에 세워진 3층 건물이 신학교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싶었
텔레비전은 이제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기기가 되었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으레 텔레비전 스위치를 켠다. 특별히 보아야 할 내용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거의 습관화된 것이다. 고요했던 집안에 텔레비전 화면이 밝아지면서 여러 가지 영상과 음향들이 퍼져 나오면서 집안에 생기가 돌고 혼자 있어도 적적한 감이 없어진다. 뉴스를 비롯하여 연속 드라마,
지난 연말에 발표된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습니다. 종교인구에 있어서 개신교 인구가 거의 천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가히 개신교가 대한민국의 1대 종교가 된 것입니다. 표에 따르면 개신교 인구는 2005년 800만명 조금 넘었는데, 2015년에는 천만에 가까운 숫자로 늘어났습니다. 95년부터 2005년 까지 거의 변동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 150
동쪽으로 난 창을 활짝 열었다. 알람 속의 닭이 힘을 다해 목청을 울리는 새벽이다. 이불을 개고 일어나 아파트 꼭대기층 복도로 계단을 밟고 올라 여명을 보았다. 두 팔을 마음껏 벌려 떠오르는 햇님을 맞이하였다. 저동해에서 뜨는 해는 출렁출렁 호흡하며 바닷물을 벌겋게 물들인다. 수평선 위로 과거와 어둠을 말갛게 씻기며 오는 순간, 우주의 새로운 언어가 되어
깊은 생각 뒤에 천금처럼 무거운 한 두 마디의 말을 내놓는 이가 있는가하면 한두 가지의 생각만으로 많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분명히 가볍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백번 고쳐서 생각해 보아도 후자에 가깝습니다. 하여 팔랑거리는 종잇장과 같은 나의 논리와 말을 단단히 붙이고 살아야 할 바위 같은 삶이 필요하다고
새해 첫날 동해 옥개 해변에서 일출을 맞았다. 주변에 있는 동해 추암 해수욕장과 정동진도 둘러보며 나의 한해를 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어디서나 소나무가 많음을 실감한다.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푸르고 첨예한 잎과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소나무 수피를 만지며 나무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잠시 내가 보았던 기억에 남는 소나무들
새벽닭이 세상을 울렸다. 여명이 깨지고 날개 짓이 먼지를 피우듯 부석 거리며 숨 가쁜 아침 해를 띄워 올렸다. 세상이 온통 닭들의 비명 소리에 움츠러들고 계란 뉴스로 도배된 세상에서 지친 어제를 잠재우지 못하고 서둘러 정유년 새해가 밝았음이 분명하다. 닭들의 수난 속에 지난해 수선함들을 씻어내지 못한 채 밀어 올려진 듯 닭 표 태양의 생각들이 무겁다. 어쨌
넬슨만델라와 더불어 남아공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분은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입니다.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가 어린 시절에 예수를 믿고 성공회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앞에서 키가 훤칠한 백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의 뇌가 생각하는 대로 나의 방은 하루 이틀 모습을 바꾼다. 지난 1월에는 굳어 온 습관을 경멸한다 하여 혁명을 몸부림치며 실천하였지만 며칠이 지나자 굴욕의 패잔병이 된 자신을 보았다. 12월의 끝에서 내 마음의 골방에 돌아와 우두커니 앉았다. 일요일 오후의 겨울 햇볕이 방에 가득하다. 나는 아직 너무나 추워 빛 만한 볕을 더 좋아한다. 세평 남짓한 공간
송구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입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많은 교회가 새해 첫 시간에 촛불을 밝혀 들고 예배합니다. 감리교의 아버지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감리교인들과 함께 매해 첫 주일을 언약갱신예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갱신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구원의 길을 기쁨으로 함께 걷기
메리 크리스마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이 평안신문 독자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1년을 하루로 생각해 볼 때 지금은 아주 늦은 저녁 쯤 될 겁니다. 추수를 끝낸 들판은 텅 비어 있고 나뭇잎들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겨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비워냈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겨울에 양분을 빨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파른 길을 올라 천안 성거산 만일사를 올랐다. 만일사 석불좌상과 5층 석탑 그리고 마애불 주변에는 연분홍 꽃망울을 피워 가을날을 하얗게 수놓았을 구절초가 망부석처럼 부드럽게 굳어 흔들리고 있었다. 일몰이 지려 하는 겨울의 산빛은 스산하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 많다. 경내를 낮은 걸음으로 거니노라면 불두화, 도라지, 매발톱, 나도 송이풀
12월은 성탄절이 있는 참 좋은 달입니다. 비단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성탄절은 기쁨의 잔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탄절이 연말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좋은 마무리와 복된 새해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2016년 겨울, 힘들고 아픈 대한민국을 보면서 서로 사랑하는 좋은 나라를 꿈꾸며 기다려 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
흘러간 장구한 세월 동안 얽히고설킨 일들이 오죽이야 많을까만은 새삼 오금 저리게 하는 일들도 묵은 일기장 외진 책갈피 속에 의젓하게 숨어있는 것을 우린 잊고 살아간다. 구구절절했던 사연들이 절반만 접힌 채로 적혀 있기도 하고, 어딘가엔 구겨진 그림자처럼 움츠러든 기억들도 있을 만하여 어쩌면 선뜻 들춰지지 않는 것이 해묵은 일기장이란 생각이 든다. 희로애락이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아침마다 내리는 서리는 두께도 더 하고 있다. 매년 이때가 되면 대봉을 사서 홍시를 만든다. 난 약간 덜된 홍시를 먹는데 남편을 떫은 맛을 못 느껴 그렇다고 놀리곤 한다. 첫서리가 내리고 나면 남편은 대봉을 살 시기를 잰다. 겨우내 땔감을 처마 밑에 쌓아두듯 남편은 대봉을 쌓아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의 숙제인 듯 올해도
성경에 사사기라는 책이 있다. 천주교인들은 판관기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후 왕정이 시작되기까지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머털도사의 모델쯤 되는 삼손이나 300명의 구릿빛 훈남 들의 대장, 기드온 같은 사람이 사사, 판관이다. 이 책에는 ‘그 때에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였다’ 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