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을 대표하는 종합예술단체인 소리사위 예술단. 예술단에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예술단을 대표하는 남자 무용수가 있다. 6살 때 처음 무용을 시작해 14년간 무용수의 길을 걸어온 이정제 단원. 시작은 그저 취미였다. 그러나 지금,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자 무용수로서의 길로 성큼 다가섰다. (편집자 주)

  처음 이정제 단원이 소리사위 예술단을 찾게 된 것은 취미생활로 장구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접한 무용에 흥미를 느낀 그는 곧바로 무용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그냥 좋았어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좋아했다기보다는 좋아하게 되면서 매력을 점점 찾게 된 것 같아요.” 어린 나이임에도 그만큼 좋아하고 열정을 보인다는 것이 그의 부모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남자가 무용을 한다는 것에 대한 다소 편견의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무탈하게 무용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도움이 컸다.

  예능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부모는 아들이 무용을 하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찍 찾게 된 그가 대견할 따름이었다.

  “사실 부모로서 특별한 예능의 끼를 타고나지도 않았고, 아이가 물려받았다는 생각도 못했었죠. 그저 아이가 좋아하기에 지원해 줬을 뿐이에요. 우리는 남들처럼 즐겁게 즐기지 못해본 세대예요. 그래서 아마도 아이들이 원한다면 더 많이 다양한 것을 즐기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의 어머니 이재숙씨는 이렇게 전한다.

  그러나, 예능이라는 것이 그저 노력 하나만 가지고는 이뤄내기 힘든 분야이기에, 이정제 단원은 그의 부모조차도 알지 못했던 특별한 끼를 물려받았음이 분명한 듯하다. 그의 열정, 끼, 그리고 예술단. 이세 조합이 잘 들어맞아 지금의 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중학교 때까지 무용학원과 학교만을 오가며 반복된 생활을 해온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점 방황의 길을 가게 된다.

  “계속 무용만 하면서 놀지도 못하다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것에 마음이 빼앗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입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다시 춤을 추려고 하니 좀처럼 마음을 잡기 힘들었었죠.”

  당시 옆에서 방황하던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시에는 무용에 더 열정을 가지고 임해주길 바랐죠. 그러나 쉽게 다그치지도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마음에 속도 많이 상했어요. 하지만 그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는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자라 줘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랬던 그의 곁에서 가장 힘이 돼 주었던 사람은 바로 그의 친 형이었다. 그는 형으로부터 많은 조언과 충고를 들었다. ‘지금 재미있게 노는 것보다 앞으로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는 형의 끊임없는 설득에 이정제 단원은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현재 그의 형 또한 ‘보디빌더’ 선수로 활약하며, 예능의 길을 걷고 있다. 형은 그와 다르게 힘들게 혼자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 부모의 지원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새벽마다 체육관을 찾아 청소를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아마도 형의 스스로 일궈낸 삶 자체가 이정제 단원에게는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단원이 가장 좋아하는 춤은 한량무이다. 많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게 해 준 춤이다. 벼슬에 관심이 없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선비의 이야기를 다룬 한량무는 당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어지러운 상태의 그를 표현해 주는 춤이기도 했다.

  “춤은 추는 사람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에 제가 그때 그 춤을 잘 춘 것이 아닌가 해요(웃음)”

  그에 반해 어머니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살풀이를 굉장히 좋아해요. 한이 섞인 춤사위가 서글프면서도 매혹적이거든요. 그런데 정제가 하기 싫어해서요.(웃음) 엄마의 입장에서 살풀이 춤을 참 멋들어지게 춰줬으면 좋겠더라고요.”

  중앙대 무용학과 1학년. 이제 20살인 그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을 아직은 어린 나이이다. 그가 꿈꾸는 롤모델은 누구일까?

  “‘누구처럼 되어야겠다’ 보다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라는 마음은 있어요 저는 무용을 하면서 부모님도 많이 의지가 됐지만, 형이 정말 든든한 지원자였어요. 방황했던 시기나 대학입시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형이 걸어온 길을 알기에 존경스럽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형처럼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형은 정신적 지주이다. 자신의 무대에 대해 그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객관적인 평을 들어보았다.

  “아무래도 객석을 좀 의식하면서 하는 것이 단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제 스스로가 미친 듯이 빠져서 추는 것 같지가 않아요.”

  좋아서 하고 있는 일임에도 스스로 빠져들지 못한다 자책하는 이 단원. 남자 무용수가 없었던 때, 어린 시절부터 활동한 이정제 군의 예쁘게 꾸며진 외모 덕에 객석 사이에서는 항상 그가 이슈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조금 의식이 되었던 탓에 지금까지도 습관이 남아있게 되었다. 더 나은 나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무엇일까?

  “평택의 시립무용단이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역을 대표하는 무용수로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아직 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지역을 위한 무용수로 활동하고 싶은 작은 소망을 밝힌다. 아마도 무대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소신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겠다. 그리고 이재숙 씨는 어머니로서의 소망을 전한다.

  “엄마로서 참 예능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왕 들어선 길이라면 후회 없고 미련 없는 무대를 만들기를 바라요. 인생도 스스로가 돌이켜 봤을 때 그런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요.”

  하고싶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지원해주는 것이 이정제 단원 부모의 교육방침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삶, 나은 삶 보다는 스스로가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자신의 꿈을 향해 조심스럽게 한걸음 씩 다가가는 이정제 단원. 그리고 그의 곁에 부모라는 이름의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 앞으로 평택의 무용수로서 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이정제라는 세 글자 이름을 떨칠 그날이 기대된다.
 

 
 
이정제 단원 프로필
· 2010년 4월 25일 제4회 우리춤 맥잇기 경연대회 최우수상
· 2012년 5월 10일 중앙대학교 제 32회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무용경연대회 금상
· 2012년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은상
· 2015년 중앙대학교 제 35회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무용경연대회 금상
· 2015년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은상
· 2015년 제 42회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대상
· 2015년 제 1회 은정 청소년 전통예술 경연대회 금상
· KBS 국악한마당 새내기의 꿈 - 한량무 출현
· KBS 여유만만 신동열전 출현
· SBS 놀라운대회 스타킹 19회 출현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