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수와 함께 찾아온 남도의 봄

 
 
 
 
 
 
  새하얀 매화가 만개하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긴긴 겨울의 퇴장을 알리는 봄의 왈츠가 시작됐다.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개구리가 깨나는 경칩이 지났는데도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만들던 꽃샘추위가 또 한 번 봄을 밀어냈지만 마침내 봄은 오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달리는 섬진수가 새봄을 알린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과 장수에 걸쳐있는 팔공산으로부터 발원해 광양만에서 일렁이는 남해와 만나기까지 오백리도 넘게 흘 러온 남도의 젖줄이다. 봄이면 바로 이 섬진청류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남도 땅을 잊지 않고 찾아드는 사람들이 19번국도를 따라 섬진강 드라이브를 즐기고는 한다. 물론 그 길 위에 신나 는 드라이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칙칙폭폭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기차와 수백 년 세월을 한결 같이 이어온 고택들 그리고 야생차밭까지. 섬진강과 한 몸 되어 달리는 19번국도변에는 풍요로운 옥토만큼 볼거리가 풍성한 여정이 기다린다. 그리고 섬진수가 마침내 쪽빛 남해와 만나기 직전 꽃향기를 머금게 되는 고장이 있으니, 전남 광양 다압면 일원에 펼쳐진 섬진강 매화마을이 그곳이다.

뽀얗게 일렁이는 매화 꽃구름

 
 
 
 
  남도의 젖줄 섬진강이 흐르는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은 꽃피는 춘삼월이면 야트막한 산자락 전체를 뽀얀 구름처럼 뒤덮는 매화의 물결로 굽이친다. 새하얀 매꽃은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구름처럼 섬진마을의 곳곳을 어루만지며 푸른 강물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룬다. 입춘이 지나고도 늑장을 부리던 새봄이 활짝 열린 것 이다. 이 작은 꽃들은 마을 이름까지 ‘섬진’에서 ‘매화’로 뒤바꿔 놓았다. 매년 3월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 이다. 꽃구경 나온 상춘객들로 복작대는 매화마을 초입에 겨우 자동차를 대고 청매실농원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 오른다. 적어도 지금 이 청매실농원에서 만큼은 온 세상이 구름 인양 안개 같은 조막만한 꽃들로 가득하고, 그 알싸한 향기에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이다. 또한 전통가옥 앞마당을 가득 채운 장독대 행렬과 이엉을 얹은 초가삼간이 매꽃과 어우러졌으니 이보 다 더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은 또 없으리라. 나무 아래 심어진 청보리는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 성큼 다가온 봄의 기운을 불어 넣 는다. 주섬주섬 아름다운 풍경들을 챙겨 넣으며 제법 높은 곳까지 오르자 발아래 뽀얀 매화꽃들 너머로 섬진청류와 나루터 그리고 정자가 있는 풍경이 어우러져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진한 매화 향기처럼 번지는 꽃 같은 웃음
 
 
 
 
 
 
  이곳 다압면 대부분이 매실농장으로 일구어지고 매화로 유명세를 타게 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수한 토질과 따뜻한 기후,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청매실농원의 주인인 홍쌍리 씨 일가의 노력 덕분이다. 매화마을의 시작은 1930년 홍쌍리 씨의 시아버지 김오천 씨가 일본에서 가져온 매화 묘목 5천 본
이었다. 김오천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매실나무 재배에 성공했고, 광양 매화마을에서 외부에 가장 잘 알려진 매실농장은 홍쌍리 씨의 청매실농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압면의 매실은 전체 매실 수요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홍쌍리 씨는 전 통식물제조명인 제14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매화마을에는 꽃
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테마 산책로가 꽃바람 난 상춘객들을 맞이한다. 또한 매화마을에 위치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 촬영지 주변에 조명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에 일몰 뒤에도 초가와 매화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광양 과 이웃한 순천에도 전국에서 가장 봄소식이 빠른 장소가 있다.
 

금전산의 이른 봄 밝히는 납월매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 자락에 위치한 금둔사에는 보기 드문 토종 홍매화를 볼 수 있다. 금둔사 홍매화는 ‘납월매’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한겨울인 음력 섣달부터 홍매화가 꽃망울을 틔우기 때문이다. 이르면 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3월까지 꽃을 볼 수 있으므로 개화기간도 긴 편이고, 이웃한 광양 섬진강 매화마을보다 개화시기도 빠르다. 절집에 있는 납월매는 모두 금둔사 주지인 지허스님이 1980년대에 심은 것이다. 수령 6백 년이 넘은 늙은 매실나무의 씨를 낙안읍성에서 얻어다가 경내 곳곳에 심었고, 그중 여섯 그루가 온전히 자랐다. 납월매는 대웅전과 산신각 옆에 위치하는데 3월에 방문하면 꽃비가 내리는 진기한 광경도 볼 수 있다. 금둔사에서 광양 매화마을의 풍경을 바라는 것은 곤란하다. 규모에서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매화 나무 여섯 그루는 수백 그루의 매화나무 군락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다. 금둔사에 홍매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독대와 범종각 주변 그리고 경내 곳곳을 청매와 백매가 수놓고 있다. 3월이 되면 이 매화나무도 모두 만개해 수수한 전각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졸졸 흐르는 약수 위에는 떨어진 붉은 동백 송이와 매화 꽃잎이 어우러져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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