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불러보았을 추억의 노래 ‘동무생 각’을 기억할 것이다.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쓴 동무생각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대구 중구 동산의료원 앞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을 가리킨다. 청라언덕 일대는 기독교를 전파 하기 위해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 진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 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오래된 건물들은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전형적인 서양식 주택으로 잘 정돈된 정원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덕분에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웨딩 촬영지와 드라마·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계산성당

 
 
  이미 100년을 훌쩍 넘긴 긴 역사를 지닌 계산성당은 서울 과 평양에 이어 이 땅에 세 번째로 지어진 고딕양식 성당 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 다. 본래 1899년 한옥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1901년 지진과 화재로 인해 전소된 이후 1년여 만에 고딕양식의 벽돌 건 물로 다시 지었다. 우뚝 솟은 두개의 첨탑이 특징인데 초기 계산성당의 사진을 보면 지금과 같이 첨탑이 높지 않았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 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로 인해 순교했던 성인들을 의미한다. 영화 <검은사제들>이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 매일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에 종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미사시간에는 내부 관람을 할 수 없다.

3·1만세운동길

 
 
 1919년 3월 1 일에 일어난 기미독립운동 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 져 대구까지 이르게 된다. 지금의 제일교회와 선교사 주택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면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과 만나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대구 독립운동의 성 지와 같은 장소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성서학당의 학생들이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 계단을 통해 만세운동 집결지로 이동했다고 한 다. 계단 옆 담벼락에 걸린 사진들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3·1만세운동길의 계단을 내려서면 큰 길(서성로) 너머로 계산성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성당으로 가 기 전 근처에 있는 음악다방 ‘쎄라비’에 들러 차 한 잔 들며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화교협회(소학교)

 
 
  대구 종로의 근대사에는 화교의 역사도 새겨져 있다. 대구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종로에서 포목과 건축, 식당을 운영하며 경제활동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화교협회 건물은 대구의 부호 서병국의 저택이었던 건물로 부지 내에 화교 어린이들을 위한 소학교도 자리 잡고 있다. 거의 9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문화재적 가치가 커 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52호로등록되었다.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관람도  가능하다.

구 제일교회

 
 
  근대문화골목 투어가 시작되는 동산청라언덕에 위치하는 대구제일교회의 옛 건물. 지난 1893년 경북 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 예배당으로 시작된 제일교회는 처음에는 기와집이었다가 성도가 점차 늘어나면서 1908년에는 단층 건물을 신축했고 이후 1933년 지금과 유사한 벽돌 교회당을 지었다. 이후 1936에 종탑을 세우면서 지금의 모습에 이렀으며 20여 년 전 동산동에 새 예배당이 완공되면서 지금의 건물은 선교관으로 쓰이고 있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달구벌대로변에 솟은 주상복합 아파트와 계산성당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 안에는 우리 전통 양식의 고택 세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로 유명한 항일시인 이상화가 생전에 거주하던 집과 국채보상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인 서상돈 선생의 집 그리고 근대체험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계산예가가 바로 그곳. 이고택들은 모두 계산2가 일대 개발과 함께 철거될 뻔 했다가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보존되고 있다.

종로(鐘路)

 
 
  흔히 종로 하면 서울 종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어지간히 큰 고을이라면 어디나 종로가 존재했다. 종로(鐘路)란 종각(鐘閣) 혹은 종루(鐘樓)가 있는 길이라는 뜻이기 때문. 대구의 종로에는 경상감영과 대구읍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이 위치해 있었다. 부자 동네였던 진골목, 큰돈이 오가던 약전골목과 접해 있어 유흥시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한편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이곳 종로일대를 배경으로 하는 자전 소설이다. 종로 곳곳에 이 소설과 관련된 그림 혹은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영남대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는 물론 물건을 잔뜩 짊어진 장사꾼까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문경새재를 넘기 전 반드시 쉬어가야 했던 곳이 바로 대구였다. 온갖 물산이 모이고 팔도의 사람이 만나고 또 헤어지던 물류의 대동맥. 지금의 현대백화점 뒤편으로 염매시장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 위에서 조선시대에는 9대 간선도로의 하나였던 영남대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중구청이 조성한 조형물이 없다면 이제 희미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게 돼버렸다.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약령시문화거리 한복판에 위치하는 한방 체험관으로 과거 정형외과였던 건물을 대구 중구청이 매입해 2년에 걸쳐 리모델링 하였다. 2층 규모의 건물에는 환경과 한방의 관계, 체질에 맞는 한방차 및 약선음식을 맛볼 수 있는 한방찻집 그리고 안마·영상·음악·향기로 오감을 자극하여 심신을 쉬게 하는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능한 옛 건물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리모델링 하였기 때문에 옛 붉은벽돌 건물의 형태가 많이 남아있는 점이 돋보인다.
 
 
  계산성당 정문 앞 큰길을 따라 계산오거리 방면으로 몇 발짝만 걸으면 왼편 좁은 골목 입구에 근대문화골목 안내판이 서있다. 계산예가로 이어지는 골목입구에는 시인 이상화가 계산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벽화로 그려 놓았다.
 
 
  수협은행 반월당지점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면 부산에서 대구를 거쳐 한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조선시대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영남대로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 효종 임금 때인 1658년부터 명맥을 유지해온 전국 3대 한약재 시장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사 객사 주변에서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열려왔으며 지금은‘대구약령시문화거리’로 지정되었고에코한방웰빙체험관과 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이 있다
 
 
  건어물, 식당, 떡집, 전집이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 다닥 붙어있는 시장통은 옛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게 만든다. 고소한 찌짐이(전) 냄새의 유혹을 뿌리치고 염매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면 종로(鐘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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