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줄기가 부려놓은
내륙의 섬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정선과 영월, 단양과 제천을 적시고 충주호(청풍호)에서 잠시 쉬었다가 경기도 여주를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한강과 합수하게 된다. 남한강은 유장하게 흐르며 강천섬, 양섬, 당남리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을 만들어 놓았다.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에 위치하는 비내섬 역시 남한강이 부려놓은 많은 섬들 중 하나로 버드나무와 갈대, 물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내륙의 섬이다.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원시적 풍광은 철새들의 보금자리로는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다. 천연기념물 큰고니를 비롯해 다양한 철새들이 이곳의 우거진 수풀에 터를 잡고 겨울을 나고 있다.

  비내섬은 생각보다 면적이 매우 넓을 뿐 아니라 주변개발이 더딘편이어서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너른 공터와 자갈밭에 펼쳐지는 억새와 갈대밭은 그야말로 훌륭한 극적 배경이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징비록>, <서부전선> 같은 작품이 비내섬에서 촬영되었다. 물론 비내섬이 한미군사훈련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는 까닭도 있다. 군사훈련에 동원되는 전차가 건너기 위한 교각인 비내교를 튼튼하게 가설했고 덕분에 촬영 장비를 실은 차량이 섬으로 들고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억새밭에 둘러싸인 아늑한 자갈밭

  이러한 환경은 캠퍼들을 비내섬으로 불러 모았다. 특히 남한강 바로 앞에 펼쳐진 비내섬 북동쪽의 자갈밭은 캠프 사이트를 꾸리기에 좋은 장소다. 뭍에서 강쪽으로 경사진 것이 조금아쉽지만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밤새 조잘대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 다만 섬 안에 나있는 길은 모두 비포장인 만큼 사륜구동 차가 아니라면 주의를 요한다.

  도심에서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이미 다 녹았지만 충주는 여전히 새하얀 눈의 나라. 그러나 정오가 가까워 오자 기온이 상승하면서 비내섬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했고 섬 안에 거미줄처럼 얽힌 비포장 길에 눈 녹은 물이 고이면서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웅덩이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어려워 자동차 바닥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야 했다.

  캠프를 꾸린 장소는 나지막한 언덕에 가려 섬 반대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성한 억새밭에 둘러싸여 아늑함 마저 느껴진다. 겨울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날씨 덕에 강물도 얼지 않고 굽이마다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시원스럽게 흘러간다.

 
 
 
 
 
 
비내섬을 캔버스 삼아
그려지는 보라빛 황혼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에는 아무래도 셸터 안에 오래 머물게 마련이다. 시린 얼음바람을 피해 체온을 유지하기에는 셸터 만한 대안이 없어서다.

  그러나 해질 무렵에는 잠깐이라도 셸터 밖으로 나와 겨울 황혼을 만끽하길 바란다.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 구름이 없는 날에는 유난히 하늘이 깨끗하고 황혼 역시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낙조는 태양이 산허리에 걸렸을 때보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갈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화로대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으면 주고 받는 대화에 묻은 온기로 인해 추위가 한 풀 꺾이는 느낌이다. 텐트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오묘한 하늘 빛깔과
어우러져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이 비내섬 위에 그려진다. 백패커들 사이에서는 LNT(Leave No Trace)라는 구호가 번지고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머물던 야영지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 속에 서 야영을 하는 만큼 자연보호를 위한 윤리의식이 강조
되고 있는 것. 우리는 자연의 일부를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비내섬에 흔적을 남기지 말고 돌아오도록 하자.

 
 
 
 
 
 
삼국시대 치열한
격전지였던 남한강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사연과 유구한 역사를 품고 흐른다. 한강과 금강, 영산강과 낙동강은 이 땅에 기틀을 다졌던 고대국가의 도읍지를 거느렸던 젖줄이 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남한강 역시 다르지 않다. 충주는 이웃한 제천, 단양과 함께 먼 옛날 중원땅으로 불리던 역사적인 고장이다. 비내섬에서 남한강 상류 방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 등 우리 고대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남한 땅에 몇 남지 않은 고구려의 흔적인 중원고구려비를 만나 본다. 중앙탑면 용전리에 위치하는 중원고구려비는 현재 우리 땅에 남아있는 단 1기의 고구려 비석이다. 워낙 낡고 퇴락해서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고구려가 전성기였던 장수왕 때, 백제 땅이었던 이곳 한강유역까지 치고 내려와 주변의 땅을 차지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전승기념탑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충주에 왔을 때 누구나 우선 가보는 곳이 남한강변에 넓게 펼쳐진 중앙탑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신라시대의 석탑인‘중원탑평리7층석탑’이 우뚝 서 있고, 한쪽에는 시립충주박물관이 있다. 이 탑 역시 충주호와 남한강 일원이 삼국시대 치열한 격전지였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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