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오늘은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다. 국력을 키우지 않고 당파 싸움에만 국력을 소모해 온 역사의 그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돼 왔다. 힘이 약한 나라는 부(富)는 커녕 힘센 나라의 약탈과 횡포 속에 백성들은 모진 고난의 힘든 생활을 해왔다.

  가난과 질병이 창궐하고 노예와 같은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국가가 튼튼하고 바로 서야만 국민들은 그 그늘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을 지키기에만 눈이 어둡고 나라 일에 소홀할 때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이날의 굴욕을 거울삼아 힘의 논리를 앞세운 국방력을 키우고 튼튼한 경제의 틀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 국방은 국방, 경제는 경제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는 12만 대군을 이끌고 1636년 12월 조선을 쳐들어 왔다.

  조선은 이들 대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듬해 2월 강화도가 함락된다. 세자빈과 대군이 포로로 잡히고 인조가 피신 했던 남한산성마저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 끝내 항복하고 만다. 결국 인조는 항전 59일 만인 2월 24일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말이 세 번이지 인조는 상복을 입고 한번 절할 때마다 땅 바닥에 세 번씩 머리를 박는 이른 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를 행했다. 임금 인조는 땅바닥에 머리를 ‘꽝 꽝’박아 그 소리가 단위에 있는 청태종에게 들리도록 했으니 피투성이가 된 인조의 모습에서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수모를 당한 것이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척화파 등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갔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내세운 서인들은 명과 친하게 지내고 후금을 멀리했었다. 그러나 명나라를 무너뜨린 후금은 나라를 ‘청’으로 바꾸고 자신들을 멀리했던 조선에 대해 ‘신하의 나라’ 라며 청나라에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조선은 척화파의 주장대로 만주족을 야만족이라며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침입한 것이다.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고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삼학사가 중국 선양에 끌려가 참형당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역사다. 그들이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세분이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에 자리한 남한산성은 이 같은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신라 때 쌓은 옛 활터다. 이를 1624년 인조 때 축성했으며 지금은 사적 제57호이자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됐다.

  남한산성에 4개의 문과 8개의 암문 그리고 4개의 장대가 있다. 임금이 거쳐할 행궁은 상궐 73칸, 하궐 1백54칸이었다. 동, 서, 남, 북의 장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장대 하나만이 남아 있다. 삼학사의 선비정신을 기리는 만해사상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일제는 명성황후 시해 이후 남한산성을 철저히 파괴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2012년에 2백여 억 원을 들여 복원공사를 마치고 현존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틈나는 대로 이곳에 자주 들러 그 날의 치욕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어떨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역사 속에서 되새겨 보게 되면 지금 같은 혼란의 정치판은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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