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내 앞에 젊은 아기 엄마가 100일 좀 넘었을까한 아기를 안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은 채 좌석이 없어 서 있었다. 마침 내가 앉은 경로석 옆자리가 비어 있기에 와 앉기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경로석이어서인지 사양을 하기에 계속 앉으라고 했더니 죄송해 하는 표정으로 와서 앉았다.
그런데 이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나와 눈을 맞추고는 해맑은 웃음을 보내며 뭐라고 소리도 내고 팔도 들썩이며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이 아기의 천진스런 웃음과 반가와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한 팔짓에 나의 굳었던 얼굴에도 웃음을 띠고 고갯짓을 하며 아기와 눈을 맞추며 화답을 했다.
아기는 계속 나에게 이런 모습으로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나는 집에 이 또래의 손자나 손녀가 없는지라 이 아기의 모습에 도취되어 그 아기 엄마가 어느 역에선가 내릴 때까지 계속 놀아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서울까지 아기와 함께 이 상태로 가고 싶었다.
아기와 엄마가 내린 빈자리엔 얼른 어떤 할머니가 와 앉았다. 할머니와 나와는 이때부터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며 갔다. 서로 생면부지이니 어느 쪽에서고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또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방금까지도 아기와 함께 서로 말은 주고받지 않아도 눈빛으로 고갯짓으로 손짓으로 서로간의 달콤한 정을 나누며 한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왔거늘 갑자기 무엇을 잃어버린 듯한 허전한 마음이었다.
 그러는중 가에 앉아 가던 노인이 어느 역에선가 내리자 다른 사람이 앉을 사이도 없이 할머니는 잽싸게 그 빈자리로 가 앉으면서 등을 벽에 기대고 신발을 벗어 내려놓고 다리를 내가 앉은 쪽으로 뻗고 팔짱을 끼면서 이내 눈을 감고 자는 척 하지 않는가. 그 할머니의 다리가 좀 더 길었으면 발은 내 무릎 위에 올라왔을 뻔했다. 할머니의 정면 모습을 보니 화장도 세련되게 했고 옷도 잘 입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교양머리 없는 할망구가 다 있나 해서 화가 치밀어 오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했다.
보아하니 나와는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비슷한 나이 같거늘 서로 간에 가벼운 인사라도, 아니면 목례라도 나누고 앉아 갔으면 오죽 좋았으랴만…….
생각할수록 밉살스런 마음만 쌓여 갔다. 이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서로 나쁜 감정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이유에서 일게다. 거기 비하면 아기들이야 그 머릿속에 무슨 복잡한 감정이 있었으랴. 보이는 것마다, 들리는 것마다 다 황홀하고 유쾌할 뿐이었을 게다. 그러기에 아기들의 천진스런 모습을 보고 누가 감히 악의를 품겠는가? 예수도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한다. 늙은이도 때로는 아이들처럼 철없는 행동을 해서 일까? 그러나 아기는 나날이 예쁜 짓을 하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늙은이는 나날이 노추로 가득 차 미운 모습만 보여 준다.
그래서 늙으면 곱게 늙으라는 말도 나온 모양이다.
어느 역에선가 노인들 서너 분이 탔다. 일반석에 앉아 있던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했다. 노인들은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앉자마자 아무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잡답을 하기 시작했다. 듣기에도 민망스럽고 창피스러울 정도의 내용이었다. ‘지공선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소리 듣는 것도 결코 달갑지 않는데 제발 지하철 안에서의 이런 노추만이라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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