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것을 뜻한다. 사찰의 현판 또는 문패 등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서각품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 또한 그것이다. 7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처럼 오롯이 서각만을 위해 살아온 경기도무형 문화재 제40호 이규남 서각장을 만나보았다.(편집자 주)

┃ 서각의 시작 
  “고등학교 2학년 때 팔만대장경판과 탁본을 보고 감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목판에 글씨가 새겨진 것이었지만 그 단순한 미 (美)에 큰 매력을 느낀 저는 그 뒤부터 혼자 칼과 나무를 구해 이웃집의 문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이 길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각과 이규남 선생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모른 체 그는 그렇게 칼을 들고 나무에 그의 삶을 새겨 나가기 시작했다.

  “80년도쯤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 배움을 허락받는 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퇴짜를 맞은 후 연락을 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이틀 후 다시 찾아갔습니다. 오로지 서각을 배우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여주에서 마포를 왕복하며 그렇게 4번을 방문한 후에야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선생님께서 저의 의지를 시험 해 보기 위한 방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는 중요무형문 화재 106호 각자 장인인 철재 오옥진 선생의 허락을 받고 3년 동안 서각을 배웠다. 처음 시작은 칼갈이부터였다. 그렇게 3년간 열심히 칼을 갈 고 서각을 배우면서 그가 얻은 것 중 가장 큰 배움은 바로 끈기 였다. 그리고 서각은 오로지 나무에 칼만 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한글서예와 더불어 한문, 사군자, 전각 등을 배우며 서각에 온 힘을 다하였다.

┃ 운명과도 같은 일
   그가 오로지 서각일 만을 해오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서각 일을 시작하기까지 그에게는 고난이 따랐다. 73년도 생계를 위해 오른 배 위에서 그가 벌었던 돈을 모두 함께 일했던 어려운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써버렸지만 지금도 그는 생에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제가 다시 서각 일을 시작할 수 있게끔 후배들이 도와줬습니다. 배 위에서 생활하면서도 항상 서각의 뜻을 놓지 않고 있 었는데, 그것을 후배들이 알고 도와줬던 것 같습니다.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뿔뿔이 흩어졌던 동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저마다 그를 찾아와 도와주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서각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이 마치 운명 과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서각은 그가 원해서만 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나가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작업하는 칼을 손수 만들어 사용한다는 그는 힘든 작업의 반복으로 인해 여름에도 팔이 시리다.

  “간혹 일에 미쳐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 했을 때는 몇 번이고 이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돈도 안되는 일을 하는데도 옆에서 든든하게 버텨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때로는 가족을 돌아보지 못한 자신에게 자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손에서 칼을 놓지 않겠다는 이규남 서각장에게서 예술혼이 느껴진다.

┃ 서각을 통해 삶을 배우다 
  그가 평생 서각을 하며 배운 것은 인내와 끈기였다. 사라져가는 전통, 인재 육성이 필요한 시점에서 서각을 배우겠다고 찾아 오는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1~2달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서각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다 보면 집중력도 생기고 끈기도 생기죠. 이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서각에 관심만 있고 1년 정도만 꾸준히 배운다면 누구나 할 수 있죠.” 좀 처럼 끈기 있는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는 요즘. 시간이 없다는 것도 다 핑계일 뿐이라는 그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서각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전한다.

  올해로 67세. 그의 흰 수염만큼이나 작품 수도 늘어간다. 이 많은 작품 중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가 보여준 것은 바로 ‘천로역정’. 무려 6년에 걸쳐 ‘천로역정’의 내용을 단풍나무 42점에 담아냈다.

  “사실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없죠. 한 작품에 짧게는 2~3일, 길게는 9개월까지 걸리기도 하지만 그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업 자체가 저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는 자신의 딸에게 서각을 전수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르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줄 모른다는 요즘 젊은 사람 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형체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진주를 찾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규남 서각장. 그의 삶은 오늘도 단단한 목판 위에 새겨지고 있다.

이규남 서각장
이규남 서각장

1991 동경 재일문화원 2회 출품
1995 경기도 박물관 현판, 주련 제작
1995 경기도 박물관 개관기념 전통서각 시연
1997 용인 등잔 박물관 현판 제작
1997 기전문화재 연구원 현판 2점 제작
1998 세종국악당 현판 제작
1999 수원종로교회 개교 100주년 기념 현판 제작
2000 경기도 박물관 능화판 외 30점 제작
2001 행정자치부장관 표창 수상
2002 충남대박물관 세한도 외 목판 제작
2006 공주박물관 목판 제작
2007 세계무형문화 엑스포 집행위원
2008 경기도 박물관 천자문 목판 제작
2008 화성행궁 여민각 성신사 현판 제작
2009 남한산성 4대문 현판 제작
좌익문
우익문
지화문
전승문
2010 한글날 청와대 시연
2010 G20 서울광장 전통서각 시연
2010 남한산성 한남루 현판 제작
한남루 주련 8매 제작
외행전 주련 6매 제작
이위정기 편액 제작
수어장대 현판복원
2011 규장각 학사지서 현판외 7점 복원
2012 한국국학진흥원 제작, 시연 및 전시
2013 공주대학교 문화재복원과 시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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